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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여행학교/제3기 세계로 여행학교

[제3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 ④]

경해여중1 화나경

 

-사전준비-

 

 

부모님과 떨어져 다른 단체에서 가족 중, ‘나 혼자외국으로 뜨는 일은 처음이었다. ‘봉사활동 시간 90시간’, ‘2주 동안 학원 빼먹음’, ‘잔소리로부터의 해방’. 3가지에 혹하여 신청한 3기 세계로 여행학교, 프리스쿨에서 들은 이야기대로, 이때까지 다닌 단순한 여행이 아닌, 정말 이름대로 다문화를 이해하는 여행학교였다.

 

 

 

 

 

-방글라데시-

 

20131230일 월요일

공항까지는 별일 없이 무사히 도착. 비행기 시간이 5:40에서 6:45로 늦춰지는 바람에 짜증이 나긴했지만, 단순히 늦춰지는것이라 기분은 금방 풀리고 여행에 대한 설렘이 더 높아졌다. 8:50. 상하이 도착. 9:50에 쿤밍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10:30. 날씨 때문에 이륙을 못한다는 방송이 들렸다. ‘단순히 <날씨>때문이라면 금방 출발하겠지.’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결국 1240. 비행기 안에서 2시간 찍고 내렸다. 그렇게 짐을 찾고 나갈려는데, 짐이 하나가 없어졌다. 누가 착각해서 들고 가버린 것 같다. 보니까 짐표도 안 맞는 것 같고, 항공사 잘못인 것 같다. 그렇게 모여서 가방을 못 찾으면 청구할 피해보상에 대해 얘기하는 중, 직원이 짐을 찾았고, 곧바로 버스를 타고 항공사에서 준비해준 호텔로 갔다.

 

20131231. 화요일

아침은 호텔에서 준비해준 기름 빵(?), 두부 맛 두유, 달걀 1개로 때우고, 버스 빈자리가 없어 2대를 보내고 3대째에 겨우 타서 (현지시간으로) 9:00. 비행기에 탑승했다. 11:25. 자다가 일어나서 기내식을 먹고, TV를 보는 중이다. 꽤나 재미있는 프로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꺼진다. 뭐지 이건. 그래서 그냥 다시 잠들었다. 그렇게 다시 자다가 1:15.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젠 방글라데시로 가야하는데 중국 직원들이 게이트가 닫혔단다. 그냥 이제 못 들어간단다. 그 말에 어이가 없어서 투덜거리고 있는데 선생님과 언니 1, 방글라데시 분들이 함께 따져서 결국 비행기 탑승. 자리가 없다니. ‘역시 중국이라고 생각했다(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3:40 다카에 도착했다. 진심으로 비행기 타는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이때까지 다닌 다른 여행들은, 정말 그냥 편한 여행이었다는게 새삼스레 다시 되새겨 졌다.

   

201311일 수요일

8:15. 기상. 추워서 자다가 몇 번이나 깨버렸다. 아침은 샌드위치랑 전투식량을 먹었다. 아침 먹고 선교사님 아들인 태희랑 언니오빠들이랑 배드민턴이랑 축구하고 놀았다. 축구할 때 지나가던 몇몇 여자들이 좀 안 좋게 보시는 것 같던데. 하긴, 여긴 여자는 사람 취급도 안해 준단다. 좀 그렇긴 했지만 뭐 문화의 차이니 하고 생각했다. 놀다가 들어와서 잠시 후, 현지 식당인 스파이스 & 허브에서 꽤 맛있게 먹고, 몇몇은 공항에 짐 가지러가고 나머지는 2명씩 짝지어 릭샤에 탑승했는데, 이런. 2팀이 사라졌다. 2오빠 2, 1언니, 오빠 2, 4명이 2:30경 실종(?)됐다가 2:50경 어찌어찌 찾아왔다. 6:00에 손으로 나름 현지식(?) 식사 후 잠시 서바이벌 방글라데시(방글라데시 말 몇 개 배움)를 하고 기행문 쓰는 중이다. 카페인을 섭취했더니 잠이 안 온다. 내일 좀 바쁠 것 같던데...... 그러고 보니 별의별일을, 한 달 안에도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3일 만에 경험하더니 멘탈들이 좀 강해진 것 같다. 살아 돌아가길 빌어본다.

 

201412일 목요일

8:00경 기상. 아침은 평소처럼 대충 때워먹고 11:10경 작은 도서관에 책 기증식 후 상화 오빠를 소개받고 기다리는데 렌트카 사고가 났다고 해서 12:55경 릭샤를 타고 길거리 쪽에 쇼모짜싱가라라고 하는 간식을 사러 나갔다. 1:30쯤 사온 간식을 먹고 아만씨의 집에 영상편지를 전달하러 갔다. 꽤 잘 사는 축에 속한다고 한다. 중산층이긴 하다는데그럼 잘 사는 사람은 얼마나 잘 산다는 걸까. 그렇게 3:20쯤 도착해 영상편지를 보여드리고 점심을 얻어먹었는데 외국인이라고 많이 배려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5:20분쯤 나와서 인사드리고 6:35쯤 학교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씻고 잘 준비를 했다.

 

201413일 금요일

9:00쯤 배 타러 가서 4시간동안 배를 타고 가서 박물관 앞에 도착했는데 이 나라에선 금요일이 우리나라의 일요일이라고 했었지라는 게 생각난다 했더니 박물관이 문을 안 열었다고 했다. 3시쯤 문을 연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어서 배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3~4시간가량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든 생각인데, 이 나라는 수질 문제가 좀 심각한 것 같다. 쓰레기 같은 것도 너무 많고, 물 정화 식물인 부레옥잠도 (인공적으로 넣어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있지만 너무 더럽다. 그런데 그 물에 씻고 빨래하고 다 하니 건강문제가 심히 걱정된다. 이런 문제점은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다.

 

201414일 토요일

9:00쯤 선교사님께서 태희를 데리고 오셨다. 그렇게 잠깐 놀다가 10:00쯤 국립박물관에 갔다. 모닐 씨의 사촌 분이 계셔서 꽤 비싼 입장료도 안 내고 과자도 얻어먹었다. 박물관에서 방글라데시의 유물도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관이었다. 생각보다 큰 한국관에 놀랐지만, ‘한국관이라고 따로 만들 정도구나라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여기 세워져 있던 송전탑도 우리나라 기업에서 만들어 준 거라고 했다. 모두가 이건 불가능하다’, ‘안 되면 안 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면 된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나라는 생각으로 발 벗고 뛰어들어 결국 성공했다니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자랑스러워지는 하루였다.

 

201415일 일요일

오늘은 조금 늦게 일어나 9:00. 역시나 아침은 넘겼다. 9:45쯤 모닐 씨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들을 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얻은 모닐 씨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선거 날이라 개인적인 차가 다닐 수 없다 하여 모든 일정이 취소가 되었고, 대신 모자멜 씨의 친척 가깝다 하여 그곳으로 영상편지를 전달하러 갔다. 모두가 갈 수는 없어 일부만 갔는데, 나는 스케치북을 넘기는 담당이라서 가게 되었다. 우리를 위해 아침과 점심, 두 끼를 모두 준비해 주셔서 먹느라 힘들었지만(?) 정말 맛있었고, 정말 고마웠다. 그렇게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릭샤를 타고 돌아왔다. 릭샤 밖에 다닐 수 없어 한산한 거리는, 마치 방글라데시가 아닌 것 같은 기분까지 들 정도로 낯설었다. 이제 내일이면 네팔로 가야 한다. 선거 일정에 맞춰(?) 와서 못한 일도 많았지만, 잘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

 

201416일 월요일

8:00 쯤 기상하여 아침을 () 빼먹고 9:00에 아침회의를 했다. 회의 내용은 오늘 서바이벌 미션에 대한 얘기였다. 미션인 마전뿔’, ‘아롱샵2곳에서 인증 샷을 찍고, 구경하고, 아롱샵에서는 엄마한테 드릴 선물도 하나 사고.(내가C)A팀과 함께 밥 먹으러 BFC에 도착하여 (예산이 많이 없는 관계로) 치킨 큰 것을 시켜서 팀원과 함께 먹고 태희의 선물을 사고 공항으로 가서 네팔에 도착했다비행기는 당연히(?) 딜레이. 게스트 하우스에 갔다. 이젠 비행기가 딜레이 돼도 그냥 그러려니 생각한다. 익숙해 졌다고 할까. 짜증낼 기운도 없다 이젠.

 

 

-네팔-

 

201417일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수니타 씨 댁으로 약 3~4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했다. 집이 꽤나 큰데도 할머니 한분 밖에 이 집에 사지 않으신다고 하였다. 목사님께서 학교에 가서 친구를 사귀어 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몸이 별로 좋지 않은 관계로 소파에 누워서 잤다. 일행 중 한명이 나를 깨워 일어나 보니 해가 져 있었다. (네팔에서는 하루 중 반나절도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불까지 들어오지 않으니 더욱 어두웠고, 방글라데시에서는 시설이 좋은 학교 안에서 지내서 인지(거기에는 불이 계속 들어왔다)어둠에 익숙하지 않아 조금은 돌아다니는데 지장이 없지 않아 있었다. 밖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밖에서는 팀원들과 또래로 보이는 현지인들이 모여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곁에 다가가 모닥불 근처에 앉아있으니 꽤나 따뜻하고 밝았다. 현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저녁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 집에 들어가 보니 거의 10일 만에 보는 한국식(?)에 좀 많이 먹었더니 기껏 재워뒀던 속이 다시 안 좋아졌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홈스테이를 하게 되어 짐을 풀

,할머니께 영상편지를 보여 드리고, 촬영하고 나서 기나긴 하루에 끝을 맺었다.

 

201418일 수요일

오늘 아침에는 조금 특별한 소식이 들렸다. 어제 저녁, 친해진 모니카라는 친구가 오늘 하루 더 이곳에 묵게 되면, 저녁식사 초대와 뒷산 구경을 시켜 주겠다는 얘기를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행들의 동의하에 홈스테이를 하루 더 하게 되었다. 일단 예정대로 포카라 쪽에 영상편지를 하나 배달하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갔다. 처음에 위에서 뛰어내리라고 할 때에는 겁도 나고 무서웠지만 하늘에 뜨고 나니 그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고, 멋있었다. 안개가 껴서 주위 산들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만 빼면 10일간의 스트레스가 다 풀릴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다시는 느끼기 힘들 것 같은, 멋지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그 후 다시 수니타씨의 집에 돌아와 낮에 얘기 했었던 판넬이라는 것을 설치해 드렸다. (이곳은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아 발전기를 돌리는 형식으로 된 전등인 판넬을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낮에 얘기를 했었다)할머니께서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201419일 목요일

오늘 일정이 가장 빡빡 했던 것 같다. 영상편지는 2집에 갖다 드렸고, 마지막에는 고아원을 갔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돌봐 주시던 아주머니와 아저씨는(우리나라 분이셨다) 원래는 12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셨지만 2명의 아이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현재 10명의 아이들과 함께하고 계셨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곳에서 오래 머물게 되어 다 함께 간식을 먹었는데, 그 중 한아이가 아주머니를 챙겨 드리는 모습에 왠지 가슴이 찡해지며 이분들이 이 힘든 일을 계속하고 계시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이 아이들도 아마 이분들이 자신의 진짜 부모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진짜 부모님처럼 따르고, 이분들도 자신의 진짜 아이들처럼 대해주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부모님께 효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여러모로 느낀 것이 많은 날 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