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로 여행학교/제3기 세계로 여행학교

[제3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 ⑩]

사대부고1 최희은

 

 

 

 

-사전준비-

 

 

한편의 영화 같았던 극적인 사흘을 보내고

우리는 여행의 시작인 1230일부터 11일의 기간 동안 남들은 인생에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할 일들을 모조리 체험해 보았다. 부산에서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의 지연으로 시작해서 상하이에서 쿤밍으로 가는 비행기는 탑승한 채 2시간이 지연된 후 취소되었고, 쿤밍에서 하룻밤을 머물러야 돼서 짐을 찾는데 은민이 배낭이 없어지고. 다음날 쿤밍으로 가는 비행기는 또 지연되어 다카행 비행기를 탑승하지 못 할 번하고. 사람은 다카에 왔는데 짐은 없고. 숙소에 오니 내일부터 스트라이크여서 활동이 불가하다고 하고. 릭샤를 탔던 아이들이 실종되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특별히 이 사흘간 내가 느낀 것은 여행은 만남라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힘없고 아무런 능력 없는 사람들이다. 중국말 한마디 할 줄 모르고, 뱅갈어 한마디 할 줄 모르지만 우리는 이 꼬인 매듭들을 잘 풀어왔다. 때때마다 우연과도 같이 감사한 인연들이 나타나 우리가 이렇게 무사히 다카로 돌아올 수 있었다.

먼저는 우리 3기 여행학교 팀원 한 명 한 명이 참 소중한 인연이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프리스쿨이 아닌 다른 시간에도 모여서 여행을 준비해서 비행기에 올라탈 때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이 시작되고서는 바쁘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나서서 도우려 하고, 불평한마디 하지 않고 기다려 줘서 선생님과 함께 사건 사건마다 나섰을 때 일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 

쿤밍행 비행기가 취소되어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을 때 영어로 안내방송을 해주지 않아 도무지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는데 뒤에 앉아계시던 일본 분께서 영어로 설명을 해주셔서 팀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또 대기하는 동안에는 할 것도 없고 상황도 모르니 멍했는데, 옆에 앉아있던 중국 꼬마들이 있어서 전에 말레이시아에서 배웠던 중국어를 써 볼 기회를 가졌었다. 좋지 않은 발음에도 잘 대답해주고 쿤밍에서 내릴 때 마지막으로 인사한 그 아이들은 참 천진난만하고 귀여웠다. (사실 말레이시아가 아닌 중국본토에서 만나게 되는 중국인들에 대해서는 안 좋은 인식이 내 속에 나도 모르게 있었는데, 이 아이들을 통해서 그런 점을 깨닫고 중국인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깊게 느끼게 되었다.)

쿤밍에서 다카행 비행기를 못 탈 뻔 했는데, 상하이에서부터 함께 콤플래인을 해온 방글라데시 분들이 옆에 있었기에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사실 정치적 상황이 안 좋아 내일은 안 된다는 얘기들은 우리가 말했더라면 별로 공항직원들에게는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국민이 그렇게 말하니 더욱 영향력이 있었던 것이고, 또 우리 11명이였다면 지연되지 않았을 비행기가 그 방글라데시 분들 20분 정도가 더 있었기에 지연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카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공항에 짐을 찾으러 갔을 때는 무슬림에서 극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하신 모밀씨께서 방글라데시 사람들과 대신 얘기해 주어서 일을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또 짐을 찾은 후에는 책이 들어있던 박스가 세관에 걸렸었는데, 귀뚜라미 보일러 공장에서 4년간 일을 하고 들어온 이주노동자 분께서 무슨 일이세요? 제가 도와 드릴게요!”라며 나타나 책을 무사히 공항 밖으로 꺼내 올 수 있었다. (이 분을 보면서 우리가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일이 왜 필요한 것인지 피부로 느낀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 이주노동자분들을 도울수록 그들도 우리를 돕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좋은 인식을 그들의 가족과 조국에 퍼뜨릴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나에게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용기가 될 거라고 느껴진다. 아마 우리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부모님께 생중계 되었더라면 우리는 그 길로 한국에 돌아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서로간의 팀워크도 더 다져갈 수 도 있었고, 자기 스스로를 성숙시킬 수 있었다. 지금 나의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제는 걱정도 안돼요이다. 처음부터 각오를 하고 와서 그런지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불안하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생각이 차분해지고 설레기 시작한다. 혼자하면 할 수 없었을 일들을 함께여서 더욱 힘차게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려운 일들이 다 잘 해결되었기에 앞으로도 잘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사람일은 안 돼는 건 없다고. 모든 일에는 길이 있다고. 지금 돌이켜보니 여태 하나하나의 일들이 참 가슴이 철렁히는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힘든 상황을 즐겨줘서 신나는 여행이었다. 앞으로의 11일이 기대된다.

 

 

-네팔-

네팔에서는 진주에서 이주 노동을 하셨던 수쿤다 삼촌이 1주일동안 우리와 동거동락해주셨다. 사실 네팔이라는 외지 땅에 아는 사람 없이, 무작정 이주민들의 가족을 찾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당찬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고맙게도 진주에서 우리 팀이 간다니까 두발 벗고 환영해 주신 삼촌 덕분에 모든 일정을 잘 마칠 수 있었다.

또 네팔 포카라 가기 1시간 정도 전에 있는 수니타씨 어머니댁에서 이틀간 홈스테이를 했을 때, 우리는 많은 네팔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네팔은 저녁 즘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데, 그 덕분에 진행팀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밖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서로 나라 국가를 불러주기도 하고, 각자의 학교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같이 어울려 춤도 추고. 같은 입장에서 동네 친구처럼 모인 우리들의 어울림은 다문화 교육이 따로 없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용기가 될 거라고 느껴진다. 아마 우리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부모님께 생중계 되었더라면 우리는 그 길로 한국에 돌아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서로간의 팀워크도 더 다져갈 수 도 있었고, 자기 스스로를 성숙시킬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했을 때 우리 입이에서 나온 말은 이제는 걱정도 안돼요였다. 처음부터 각오를 하고 와서 그런지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불안하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생각이 차분해지고 설레기 시작한다. 혼자하면 할 수 없었을 일들을 함께여서 더욱 힘차게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려운 일들이 다 잘 해결되었기에 앞으로도 잘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사람일은 안 돼는 건 없다고. 모든 일에는 길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