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로 여행학교/제4기 세계로 여행학교

<제4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 ⑧ - 동명중 2학년 김민규>

동명중 2학년 김민규

인도네시아

 

항공기를 탑승할 때의 느낌? 굉장히 들뜨게 되고 설렜지만 약간 긴장도 함께했다. 자카르타로 향하던 항공기 에서는 약간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들어 바이킹을 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기대했던 기내식은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냄새가 상한 것 같았다. 우욱, 지금도 생각하기 싫다. 처음으로 방문한 스완다씨 집의 동네는 밤이라 집집마다 불이 꺼져 있어서 음침했다. 귀신의 집 같은 곳이었다. 그래, 약간 암흑가의 마피아 동네 같았다. 집집마다 나온 음식은 비슷했다. 처음에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가서 꽤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홈스테이를 하면서 외국인도 결국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어째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후한 인심이 인도네시아로 간 것 같은? 발전하면서 인심이 대부분 사라진 한국과 발전하지 못했지만 인심 좋은 인도네시아는 영 반대인 것 같다.

 

문화교류

강기범 형과 서양혜 누나가 가상으로 인도네시아 자바지역 전통혼례식을 올렸다. 인도네시아 현지인도 못하는 행사를 한다니 굉장히 흥미로운 걸 내가 왜 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언론에도 뜰 수 있고, 인도네시아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을 것 같다.

전통혼례 체험이 끝나고 또래 친구들과 수영자을 갔다. 수구도 했다.

난 물이 싫은데 누군가에 의해 떠밀려 들어갔다.

그리고 파트너 디아. 한국 이름은 여빈이다.

내가 버스에서 이 여자애 어깨에 기대 잤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인도네시아 음식&사람들

뱀의 머리 형상을 한 냄새도 구린 과일과 망고스틴, 망고 등. 망고는 경유맛과 휘발유 맛이 났다. 향신료를 써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생으로 나온 것을 아스무니씨 집에서 알고는 내가 먹는 망고는 망고가 아닌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소또와 깜뽕이란 양고기 음식이다. 소또는 뭔가 익숙한 음식 같아서 마음에 들었고, 양고기는 부드럽고 입에 잘 맞았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가족 분위기는 엄숙하고 긴장감이 도는 듯 했다. 우리가 손님으로 너무 많이 온데다가 외국인이라니! 자신의 집이라도 굉장히 어색할 것 같았다.

스완다 씨 삼촌이나 산토소 씨 형은 한국말도 잘하고 우리에게 가족을 소개해주어서 정이 간 것 같다.

 

발리에서 생긴 일

 

발리!

상의 판타스틱한 신혼여행지!

그런 곳에 가게 되어 몸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입이 안달이다. 그렇게 간 발리, 역시 몸매가 좋은 사람들이 많더라. 그래 그리 눈호강 좀 하고 웃통을 벗어던지고 해변에서 놀았다.

수영도 못하지만 오늘만큼은 물에서 놀고 싶은 집념이 강했다. 서양혜 누나가 날 물에 넣으려 집요하게.. 까진 아니고 어느 정도 무섭게 하더라.

어이구 무서워서 역관광을 시켜줬지. 리고 모래에 파묻혔다. 얼굴에 직진하는 햇살들이 매우 따가웠다. 이러다 산채로 흑형이 되는건 아니겠지 싶었다.

다음엔 얼굴 좀 가리고 거북이가 되어야겠어. 여기서 거북이라 쓴 이유는 날 모래에 묻을 때 컨셉이 거북이였기 때문이지.

 

 

말레이시아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며 사람다운 이성을 키우는 그런 학교. 그런 힐라 학교를 다녀왔다. 아이들은 대개 저학년 같아서 귀여웠다. 그중에 천이슬 닮은 여자아이도 봤던 것 같다. 힐라 학교하면 파트너 마티가 생각나. 그는 굉장히 장난스럽고 재미있는 친구였다. 마티는 여자 파트너가 아닌 남자이고 동갑이어서 편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어. 나도 영어를 좀 하는 놈 같았지. 아버지가 파키스탄 배우인 형제도 만났고. 마티 친구 알리, 일명 게이 같은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항상 밝은 표정 이었다. 우리 같은 공부에 찌든 슬픈 대한민국 학생처럼 정색을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이 굉장히 부러웠다. 나도 이들처럼 내 위치, 형편을 잊고 밝게 웃으며 세상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계단이 무수히 많은데다 경사도 높은 사원에 갔다. 원숭이들과 비둘기들이 공존했다. 마티와 찬길이와 난 무식하게 그 계단에서 달리기 시합을 벌였다. 난 선두로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95% 남기고 체력이 받쳐주지 못해서 마티에게 역전당해 버렸다. KCC. 굉장히 비싼 쇼핑몰이라고 했다. 물가가 굉장히 비싸서 구경만 했다. 쌍둥이 타워도 봤는데 데칼코마니처럼, 거울처럼, 복사해놓은 듯 했다. 밤에 반짝반짝하는게 아름다웠다. 이런 말레이시아의 훌륭한 밤의 경관을 진주에서도 보고 싶다. 아예 그냥 우리 집 창문 한 폭에 가득 채우고 싶다.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 뚜올슬랭 박물관

 

 여기가 그 바로 킬링필드 시절의 교도소, 그래서 방마다 살기가 느껴지고 흉기들이 있었구나. 킬링필드 시절 캄보디아 지식인 대부분이 학살당했다.

국민 1/3 정도가 사라졌다니 한 세대가 사라졌다. 이건 뭐 어떻게 해도 보상을 받을 수가 없다. 그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범들이 살아있다니 치가 떨린다. 이렇게 캄보디아가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2주간의 일정이 바닥을 드러냈다. 한국에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지만 마음 한 켠에 약간의 아쉬움도 남아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왔다면 더 보람찼을 것 같은데, 그래도 추억으로 남을 이 여행과 알게 된 친구들을 잊지 말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