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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여행학교/제4기 세계로 여행학교

<제4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 ⑨ - 진주제일중 2학년 박찬길>

진주제일중 2학년 박찬길

인도네시아

 

첫 날 급하게 자카르타 공항에 들어갔다. 그렇게 공항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피흐리씨 집과 지민이 파트너 집에 도착했다. 새벽3시 먹을 것을 주셨다. 또 주셨다. 과일 먹고 5시쯤 돼서 잤다. 7시 또 먹었다. 영상을 보여준 뒤 또 먹었다. 먹고 하다가 피흐리씨 집에 갔다. 영상편지를 보여준 뒤 또 먹었다. 다먹고 학교에 갔다. 애들이 막 미친듯이 싸인 해달라고 하길래 첨엔 뭐지? 이러다가 시간이 갈수록 좋았다. 그렇게 학교에서 나와 피흐리씨가 다니던 학국어 학원에 갔다. 오토바이를 타고 5분정도. 가서 한국어 공부를 했다. 한 시간이 흐르고 다시 오토바이 타고 버스 타러갔다. 버스를 타서 몇 시간을 달려 진주학원에 도착했다.

 

 

 

 진주학원에 와서 갈아입을 옷, 속옷, 수건을 대충 챙겨서 버스에 올라탔다. 근데 바로 수영장으로 가지 않고 기계고등학교에 들렀다. 오토바이도 조립하고 자동차도 조립하는 것을 보다가 2층 강당에 갔다. 학생들의 군기가 바짝 차려져 있었다. 목소리도 해병대처럼 우렁찼고 눈빛도 초롱초롱했다. 그렇게 또 연설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 라야를 부르고 뽀똥 베벡 앙사를 불렀다. 약간 민망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게 참 멋있게 느껴지리라 믿었다. 그렇게 다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수영장에 갔다. 풍덩풍덩 첨벙첨벙. 수구를 했다. 놀다보니 해는 지고 저녁때가 됐다. 어느 식당에 가서 뭘 먹으려 했지만 역시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맨밥 먹고 말았다. 먹고 버스타고 진주학원에 와서 씻고 잤다. 인도네시아의 여정은 끝이 아니지만 너무 많다.

 

말레이시아

 

비행기 타고 1시간정도 해서 말레이시아에 왔다. 오니까 밤이 되어 있더군? 공항에서 나오니 에녹 선교사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난 멀미가나서 차에서 자버렸다. 에녹 선교사님 집에서 이틀을 묵었다. 힐라학교에서 우리 파트너들도 생겼다! 첫 날에는 파트너를 만나서 같이 점심을 먹고 수도관공장도 가보고 메르데카광장에 가서 사진도 찍었다.친구들과 페이스북 친추도 했고 별의 별짓은 다했다. 이튿날은 같이 색분할 그림그리기도 했다. 그러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서로 토닥여주고 잘 가라고 인사도 해주었다. 흐뭇했다.

 

 

 

 

캄보디아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로 왔다. 오니까 한국 차들이 너무 많았다. 중고차가 캄보디아로 온거라 하셨다. 캄보디아에서 우리나라차를 보니 색달랐다. 우린 차를 타고 호텔로 들어 갔다. 바로 간 건 아니고 샤브샤브를 먹고 갔다. 가서 그냥 놀다가 자버렸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쌀국수를 먹고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또 먼 길을 달려서 연생집에 왔다. 거기서 1~2시간 정도를 보내고 이동하는 도중에 차가 고장나버렸다. 그래서 차에서 내려 가까운 매점에서 사탕수수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그렇게 또 2시간이 흐르고 차는 원상복구 됐다! 그리고 다시 한30분 정도 차를 타고 소폰씨 집에 왔다. 소폰씨 집에 와서 영상편지를 보여 드리고 또 뭘 먹 는도중에 양혜누나가 화장실가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줬더니 바퀴벌레 있다면서 막 소리지르며 뛰쳐나왔다. 엄청 웃겼다. 그리고 나와 가족들과 인사하고 사진 찍고 다하니 비가 내렸다. 우린 숙소를 찾아 시내로 나왔다. 엄청 좋아 보이는 호텔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방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다른 호텔로 갔다. 첨에 갔던 곳보다 별로였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도착하니 첵속홈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를 집까지 안내해주었다. 들어가서 인사하고 씀밧형이랑 기범이형은 태양광시스템을 설치하고 우리는 대충 점심을 먹고 놀았다. 물소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타진 못했다. 우리는 달리고 달려서 미쓰사먼씨 집에 왔다. 가족이많았다.

대접할게 없는지 콜라랑 과일 젤리만 주셨다.이렇게 그날하루가 저물어갔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원래 숙소로 들어가서 그냥 자버렸다. 마지막날, 아쉽게도 몇 명은 아파서 숙소에서 쉬고 나머지 아이들만 임실라이씨 집에 갔다. 다른 집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이들이 많아서 풍선 달라면서 졸라댔다. 정말 정신없었다. 센터장님이 애들 데리고 나가서 풍선 불어주라고 하셨다. 입구에 나가서 풍선을 많이 불어줬다. 더워서 그런건지는 모르지만 힘이 다빠졌다. 음식대접을 받고 먹고 사진 찍고 작별인사를 했다. 끝이다. 한편으로는 좋았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타서 몇 시간을 달리고 달려 호텔로 돌아왔다. 아픈 형, 누나들을 데리고 킬링필드에 왔다. 캄보디아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요기서 나왔다고 센터장님이 그러셨다. 안경 쓴 사람과 손이 부드러운 사람은 무차별 학살했다고..충격적이었다. 그냥 가난하고 볼품없는 나라이라고 깔보던 내가 한심했다. 그리고 캄보디아인들을 무시했던 마음도 사라지고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우리는 박물관에서 나와 공항에 왔다. 마지막이라서 아쉬웠다.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왔다. 홍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우린 2시비행기를 타고 약6시경에 한국에 도착했다. 멀미 때문에 기분이 좋진 않았다. 공항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사천에 다오니까 솔비누나가 없었다. 마지막에 좀 그랬지만 엄마, 아빠를 만나서 좋았다. 다같이 한 가족이 돼서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다먹고 우린 다시 꼭 만날 것을 약속했다. 좋은 추억으로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