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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외국인 노동자에 `고향의 情` 배달 …

 보고픈 얼굴ㆍ목소리 CD에 담아 (2007-09-21 15:31)

 
"만리 타국에서 고생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추석 선물로 가족 사랑과 고향 소식을 담은 CD만큼 좋은 게 있겠습니까.

근로자들이 향수를 달래고,즐거워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며 엔도르핀이 팍팍 솟습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1일 경남 사천시 사천이주노동자센터.이곳에서 만난 '사랑의 배달부' 자원봉사단원들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고향을 찾아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추석 때 타국에서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추석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며 CD 제작 작업을 잠시 멈추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외국인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 간 애틋한 사랑과 정이 담긴 'CD 배달사업'은 이 센터 이정기 국장이 아이디어를 냈고,최연수씨(41·택시운전기사)와 이현종씨(34·교회전도사),이기훈군(16·부산중 3년) 등 3명의 봉사단원들이 의기투합해 이뤄진 것.

이 국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에서 일한 지 몇 년이 지나도 비싼 비행기 삯 때문에 그리운 가족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며 "따라서 센터 자원봉사자들 중 몇몇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신해 이들의 고향에 직접 찾아가 가족 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영상 메시지를 배달해 근로자들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만큼 외국인에게 잘해줘야 미래에 협력자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현종씨도 "한국에서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간 동남아시아 근로자들이 한국인 욕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좋은 한국인도 많다는 것을 보여줘 국가의 대외 신뢰도를 높이고 근로 의욕도 높여주기 위해 봉사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인 수뜨리스노씨가 21일 경남 사천 이주노동자센터에서 두 살배기 딸을 안고 있는 아내 힐자씨와 가족들의 사진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이 봉사활동은 지난 5월 말 시작됐다.

사천에 있는 인도네시아인 근로자 중 고향 소식을 전하고 싶은 사람을 모집,이들의 안부 메시지를 동영상에 담고 사진 앨범으로도 제작했다.

당초 15명가량을 대상자로 생각했으나 요청이 많아 25명으로 늘렸다.

'사랑의 배달부'들은 한국에서의 동영상 제작이 끝난 즉시 사비를 털어 지난 7월16일부터 28일까지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막상 공항에 내리니 지리도 잘 모르는 인도네시아 오지 25곳을 방문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다행히 사천에서 일할 때 다쳐 센터에서 도움을 줘 인연을 맺은 인도네시아인 아찌씨가 운전과 안내를 맡아 배달부 역할을 겨우 해낼 수 있었습니다."(봉사 활동자들)

"자카르타에서 오지인 숨바와 지역까지 20년 가까이 된 중고 렌터카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밤낮 없이 달리다 보니 운전사인 저도 매일 파김치가 됐죠.하지만 '사랑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마을로 들어서면 가족과 친척 등 온 동네 사람들이 뛰어나와 반겨 줘 정말 기뻤습니다.

내년에 또 가기 위해 택시 운전하면서 짬짬이 테이프를 틀어 인도네시아 말을 배우고 있습니다."(최연수씨)

"음식도 안 맞고 화장실이 불편해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죠.그렇지만 외국인 가족들이 우리가 배달한 동영상 하나로 눈물 흘리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다시 힘이 나 근로자들을 위해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냈죠.내년에도 꼭 갈 거예요."(이기훈군)

이날 센터에서 봉사단원들이 제작한 CD를 컴퓨터에 넣자 외국인 근로자들의 가족 사랑이 흘러 나왔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 중 사천에 온 인도네시아인 수뜨리스노씨(40).지난 5월 '사랑의 배달부'를 통해 고국에 있는 부모님과 아내,그리고 자녀들에게 보낸 영상 편지의 답장을 받았다.

"부모님 잘 지내십니까.저는 한국에서 잘 있어요.여보 잘 지내.얼굴도 모르는 우리 예쁜 둘째,잘 지내니." 자신이 보낸 영상 메시지를 본 동영상 속 아내 아이누르 하띠씨(36·교사)는 "여보,잘 지내요.가족들 건강해요.얘가 둘째 힐자(2)예요.정말 귀엽죠"라면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수뜨리스노씨는 "화면으로나마 애 얼굴을 보니 힘이 난다"며 "열심히 일해 빨리 돈 많이 벌어 고향에 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당뇨와 관절염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인도네시아인 수나르또씨(33)는 "어머니,건강은 괜찮습니까.치료 잘 받으세요.정말 보고 싶네요"라고 안부를 전했고 동영상 속 어머니는 "나 잘 지내고 있다.걱정하지 마라.너도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라"면서 울먹였다.

이어 "아들 소식을 전해 준 한국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의 안부 배달 사실이 알려지자 다른 나라 근로자들에게서도 소식을 전해 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다.

이 국장은 "앞으로 필리핀과 베트남으로 봉사 지역을 넓혀 '따뜻한 애정을 가진 한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사천(경남)=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