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아중2 정희찬
-사전교육-
처음 세계로 여행학교에서 가는 공정여행은 그 기간이 방학이었기 때문에 정말 가기 싫었다. 하지만 엄마께서 돈을 입금하시고 환불이 안된다하셔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쩌다가 외국으로 여행을 가기 전 1달 동안 하는 교육을 받으러 갔다. YMCA 3층으로 첫 번째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 우리는 정말 어색했다. 그곳에서 “까꿍” 이라고 팀명을 정했다. 그리고 “행쇼”라고 우리 팀 구호를 정했다. 두 번째 교육 때는 공정여행에 대하여 배웠다. 그리고 공정여행이란 참 좋은 것이란 것을 알았다. 세 번째 교육 때는 사천 다문화센터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외국에 가서 지켜야 할 점들과 그 지역의 질병과 예방법에 대하여 배웠다. 마지막 교육 때는 우리가 전해줄 이주민들 영상을 찍으러 갔다. 내 짝은 “럿소티에“ 씨였다. 그곳에서 그 분과 대화를 하면서 친해지고 영상을 찍었다.
8월5일 밤, YMCA 4층 강당에서 환송식을 했다. 환송식을 끝내고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10시 20분에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니 마음이 설레였다. 자카르타에 도착한 후 우리는 그곳에서 피흐리씨 집까지 차를 타고 가면서 하루를 보냈다. 정말 불편했다. 피흐리씨 집에 가자 그의 가족 분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가 가족 분들께 피흐리씨 영상을 보여드리자 가족 분들이 정말 좋아하셨다. 또 우리는 그 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어 주었다. 그 아이들은 풍선을 정말 좋아 했었다. 나는 내 담당인 리서치를 하였다. 그런데 언어가 달라서 영어로 대화해야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허빈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여 겨우겨우 끝을 내었다. 그다음 우리는 수립또 씨 집을 갔다. 수립또 씨는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폭행을 당하여 인도네시아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나도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차를 타고 달려 진주학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씻고 샤워도 할 수 있었다. 진주학원 원장님은 인도네시아 분이셨는데 인도네시아는 낮에 밥을 먹지 않는 라마단 기간이라서 낮에는 우리가 직접 밥을 해 먹어야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온 카레와 짜장으로 점심을 때웠다. 우리는 그곳에서 인도네시아 친구들을 만나 문화 교류를 하였다. 말이 잘 안통해서 힘들었는데 그래도 얘기를 하다 보니 쪼끔 친해졌다. 얘기를 하다가 우리는 점심을 먹고 인도네시아 친구들과 수영장에 갔다. 그곳에서 한국 대 인도네시아로 수구를 하였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한 점차로 졌다. 아쉬웠지만 재미있었다.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고 헤어지게 되었다. 진주학원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진주학원을 떠나 밤방씨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밤방씨 영상을 보여주니 가족 분들이 정말 많이 우셨다. 밤방씨 가족들과 인사하고 우리는 발리로 향했다. 차안에서 자고 일어나보니 발리로 가는 항구 앞 식당에 와 있었다. 그곳에서 “나시고랭” 이라고 하는 볶음밥을 먹고 발리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발리로 향했다. 발리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아리랑” 호텔에 갔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다. 밥을 먹고 그곳에 있는 수영장에서 재밌게 놀았다. 그다음 날 우리는 백화점에 가서 기념품과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캄보디아로 가기 위하여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캄보디아-
우리는 공항에서 바로 캄보디아로 가지 않고 말레이시아를 갔다가 캄보디아로 갔다.
캄보디아에 있는 프놈펜 공항에서 우리는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수키 집에 갔다. 우리나라 샤브샤브 같은 것이었는데 맛있었다. 수키를 먹은 후 우리는 숙소에 갔다. 숙소에서 우리는 김기대 선교사님을 만났다. 그리고 우리 중에 캄보디아어(크메르어)가 되는 사람이 한명도 없기 때문에 영어와 캄보디아 어를 할 줄 아는 나릇 형을 데려오셨다. 캄보디아에서 우리가 주의 할 점과 인사법 등 여러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잤다. 다음 날 우리는 쌀국수 집을 갔다. 그곳에 메뉴가 밥과 쌀국수가 있었는데 나는 쌀국수를 먹었다. 밥을 한 번 먹어봤는데 쌀국수를 왜 시켰는지 후회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우리는 4집을 방문하기 위해 빨리 차를 타고 2시간 쯤 달려 미앗사먼 씨 집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캄보디아어(크메르어)로 우리를 설명하는 말이 적힌 스케치북을 미앗사먼 씨 짝인 혜지 누나가 천천히 넘겼다. 그러고 난 후 미앗사먼 씨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다음 다시 차를 타고 다음 집으로 향했다. 그다음 집에서도 이렇게 하고 그다음 집에서도 이렇게 하고 그다음집인 로반나 씨 는 너무 시간이 늦어서 할 수 없이 갈 수 없게 되었다. 못가게 되어 미안했다. 다음 날 로반나 씨 형이 찾아와 선물과 영상을 가져가셨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내 파트너 인 럿소티에 씨 집으로 갔다. 근데 그때 스케치북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나릇 형 덕분에 별 무리 없이 진행 되었다. 영상도 잘 보여 주었다. 가족 분들은 영상편지를 보면서 우셨다. 우는걸 보니 마음이 찡했다. 그리고 뿌듯했다. 내 짝지의 가족들이 영상을 찍을 때도 같이 서 있었다. 나만 그렇게 한 것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가족 분들과 인사를 하고 우리는 다음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릇 형이 저번에 비오는 날에 차가 구덩이에 빠졌는데 그걸 빼려고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우리를 도와주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집으로 갔다. 정말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반 넹사이 씨 집에 갔다가 우리는 씨엠립 이라는 지역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꼬박 하루를 달렸다.
씨엠립에 도착하여 우리는 앙코르와트에 갔다. 앙코르와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3시간 만에 돌았지만 원래는 7일 정도 걸려서 돌아본다고 한다. 그곳에는 돌이 참 많았다. 가는 곳마다 돌이 있었다. 그리고 계단같이 올라가는 곳이 있었는데 왕이 그곳을 어떻게 올라갔는지 신기했다. 앙코르 와트를 다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어린 아이들이 원달러 원달러 하는 모습을 보고 좀 안쓰러웠다.
다음날 우리는 뚜울슬랭 박물관에 갔다. 그곳에서 “폴폿“이라는 한 사람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크메르루즈“라고 하였다. 폴폿은 캄보디아에 있는 지식인들은 모두 죽였다고 했다. 사회주의 사상을 머리에 심어 주어야 하는데 지식인들은 그런 사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반박할 것이라 생각하여 길 가는 사람을 잡아 손에 굳은살이 없는 사람은 노동을 하지 않고 공부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죽이고 안경을 쓴 사람은 책을 많이 보기 때문에 눈이 나쁘다 생각하여 죽였다고 했다. 이렇게 죽어 나간 사람은 캄보디아 인구의 3/1이나 된다고 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그럴 수 있는지 충격 받았다. 고문 도구들이 섬뜩했다. 캄보디안들의 아픈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프놈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홍콩을 경유하여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외국에 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한국에서 이주민들을 보면 따뜻하게 대하고 밥도 남기지 않고 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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