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여행학교/제2기 세계로 여행학교

[제2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 ①]

SMC. 2013. 11. 2. 14:39

경해여고2 정혜지

 

-사전교육-

 

 

76일에 우리는 처음 만나게 되었다. YMCA 3 층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정말 긴장되고 어색함이 감돌았다. 이날 우리는 액션러닝의 까꿍이라는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는 시간을 가졌다. 2라는 나이에 동생들에게 까꿍이라고 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즐거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첫 번째 교육을 받을 때 까지도 이번 여행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인지 깊은 이해는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사전교육을 통해 보통 관광 목적이 아닌 현지인들과 함께 공존 할 수 있는 착한여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전교육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교육은 아무래도 외국인 노동자들과 만남을 가지고 동영상을 찍은 것이다.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 중 내 담당이자 친구인 미앗사먼은 나와 만남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이를 보지 않고 서로의 얼굴만 보면서 보이는 대로 상대의 얼굴을 그려주고, 궁금한 것 묻고 답하는 등 여러 활동을 했다.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활동에서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에요?” 라는 질문에 미앗사먼은 딸과 아내가 가장 보고 싶다.” 라고 대답했고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괜히 물어 봤나 라는 마음과 동시에 내 마음이 짠해 졌다. 그리고 영상편지를 찍으면서 내가 이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만약 나라면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타국에서의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바로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을 것이다. 처음 사전 교육을 받기 전에는 그냥 재미있게 놀다가 오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교육을 받은 후에는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이 단순히 여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편지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사전교육을 통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들을 피하기만 했던 것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었고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마지막 사전교육이 끝나고 84일 저녁 11시에 우리들은 YMCA 4층에 모여 환송식을 열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지만 곧 차를 타고 갈 생각을 하니 들뜨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우리들은 약 5시간 정도를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1020분 비행기를 타고 우리들은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로 떠났다. 인도네시아로 가는 길은 정말 힘들었다. 장시간 차를 타는 것도 힘들었지만 비행기기에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처음 자카르타에 도착 했을 때 우리들은 차안에서 이동하며 밤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른 점심시간 때에 피흐리씨의 집에 도착을 했다. 마을이 참 아늑하고 정감 있어 보였다. 우리가 집안에 들어서자 선뜻 반겨 주셨고 커피와 먹을 것도 주셨다. 처음 보는데도 반갑게 맞아 주셔서 놀랐고 기분도 좋았다. 우리들은 마을 아이들에게 풍선도 불어주고 색종이도 접어주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풍선을 잘 불지 못 하고 색종이도 잘 접지는 못 하지만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고 더 만들어 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고 하고 수립도씨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자신의 가족을 위해 한국으로 돈을 벌로 왔지만 한국인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그것을 견디지 못해 다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고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많은 기대를 하고 왔을 텐데 사람들에게 상처만 받고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의 방문으로 그가 입은 상처가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기도한다.

 

 

수립또씨 집을 방문 한 뒤 진주학원이라는 한국어 학원으로 이동 했다. 진주학원은 한국으로 일을 하 러 오기 위한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공부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학원의 원 장님인 야니와 그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대 충 짐만 풀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진주학원은 나에게 정말 천국 이었다. 씻지도 못 하고 피곤에 지쳐 있었는데 이곳은 침대도 있고 좋은 샤워장도 있었다. 처음으로 진주학원에서 손과 물로 뒤처리 를 했다. 다소 더러웠지만 화장실을 다녀와서 기분은 상쾌했다. 다음날 인도네시아의 친구들과 함께 문화 교류를 하였다. 서로 짝을 정하여 e-mail이나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이름이나 취미, 흥미, 좋아하는 것 등을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부끄럽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웃기만 했지만 얘기를 할수록 더 친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문화교류를 위해 화회탈과 각시탈에 물감을 칠하는 활동을 하였는데 내가 색칠한 탈 보다 친구가 색칠한 탈이 더 예뻐 보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연락하자는 말을 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 날 저녁 우리는 다음 일정을 위해 목사님과 간사님이 미팅을 하자고 하였다. 목사님께서 인도네시아의 지도를 보여주며 우리가 지나온 길을 설명해 주셨고 가야할 길을 보여 주셨다. 계획된 일정으로는 브로모화산을 가야하지만 우리는 차를 많이 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브로모화산을 가지 않고 밀린 빨래도 할겸 진주학원에서 오전 내내 푹 쉬다 밤방씨 집을 방문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다음날 야니씨의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차를 타고 진주학원을 떠나 밤방 씨의 집을 가서 영상 편지를 전하게 되었다. 밤방 씨의 가족들은 영상편지를 보고 그리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고 우리들에게 고맙다며 자고 가라고 했지만 우리들은 다음여정이 있어 결국 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마지막 장소는 발리였다. 발리로 가는 길도 만만치는 않았다. 밤방 씨의 집에서 약 12시간 정도 차를 타고 배를 타는 곳 까지 이동했다. 배에서 내려 4시간을 더 가야 우리가 묵을 호텔이 있었다. 호텔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보니 정말 좋은 곳 이었다. 특히 바로 앞에 수영장이 있어서 너무 좋았고 바로 옆에는 한국식당이 있어서 더욱 좋았다. 내일 부터는 캄보디아에서의 또 다른 여행이 시작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했던 것이 연습이라면 캄보디아에서는 실전처럼 할 것이다.

-캄보디아-

우리들은 811일 발리에서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이른 새벽에 비행기를 타서 너무 피곤해 앉자마자 나는 곯아 떨어졌었다. 쿠알라룸프에서 비행기를 타 우리의 목적지인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했다. 도착한 첫 날은 식당에서 수끼를 먹었고 숙소에서 쉬었다. 숙소 방에서 나오면 커다란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곳은 우리가 하루를 마치고 앉아서 하루를 정리하는 곳 이였다. 이 날 우리들은 캄보디아 일정을 도와주기 위해 오신 김기대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선교사님은 우리를 위해서 나릇이라는 오빠를 불러 캄보디아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우리가 캄보디아 말을 하지 못해서 나릇 오빠에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하면 오빠가 사람들에게 캄보디아 말로 말해주는 것 이었다. 정말 우리에게는 필요한 존재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목사님께서 인도네시아 말을 하실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주무립쑤어”(만났을 때 하는 인사), “주무립리어”(헤어질 때 하는 인사)라는 말밖에는 아는 말이 없었다.

다음날 우리는 첫 번째 집으로 가게 되었다. 내 담당인 미앗사먼씨의 집이었다. 가는 길에 우리들은 아침밥으로 바게뜨 빵을 먹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캄보디아에서 바게트 빵을 먹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리지널 바게트빵이라고 목사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확실히 우리나라에 먹었던 바게트빵과는 맛이 달랐다. 가는 길에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기 위해 선착장에서 잠깐 기다리는 동안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을 나이쯤 되어 보였다. 누구의 잘못으로 그 아이들은 거리로 나와야 했을까? 마음이 아팠다. 강 건너편 까지 가는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황토빛의 강을 건너 미앗사먼의 집에 도착했을 때 내 임무는 우리를 소개하는 내용과 이곳에 온 이유를 캄보디아어로 적어 놓은 스케치북을 넘기는 일 이었다. 우리들은 자신의 담당 친구 집을 갈 때 모두 그렇게 해야 했다. 스케치북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 떨리고 긴장되어 웃으려 해도 좀처럼 웃을 수 없었다. 동영상을 전하고 가족들이 웃는 모습을 봤을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고 뿌듯함을 느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집으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 밖을 봤을 때 주변풍경은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다. 농촌이라고 하면 비슷할 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농촌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주변이 나무와 풀로 되어 있었고 소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와는 생김새가 다른 소들이었고 하늘도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예뻤다.

이 날 우리들은 미앗사먼집을 포함한 4개의 집을 갈 계획이었지만 길이 좋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타고 있던 차의 바퀴가 빠지게 되었다. 나릇오빠와 목사님과 간사님과 남자 학생 2명이 비에 젖으면서 차를 밀어 다행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시간에 착오가 생겨 로반나라는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다음날 로반나의 형이 우리의 숙소로 찾아와 영상과 선물과 앨범을 가지러 오게 되었다. 우리가 갈 수 없게 되어 정말 안타까웠다. 813일 이 날 우리가 갈 집들은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와 거리가 가까운 곳 이여서 한결 낳은 일정이었다. 차를 타고 첫 번째 럿소티에 씨의 집에 가는데 스케치북을 숙소에 나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물품 담당인 나는 매우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결국 이 날 아이들은 스케치북 없이 나릇 오빠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숙소를 갔을 때 스케치북이 사라진 것 이었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짐을 옮기는 과정에서 흘린 것 같았다. 그런데 더 상황이 더 악화 되었다. 나릇 오빠가 물웅덩이에서 차를 빼다 비를 맞아 심한 감기에 걸려 마지막 집을 함께 가지 못해 소통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걱정을 가득 앉고 814일 마지막 외국인 노동자의 집인 반렝사이씨의 집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반렝사이의 여동생이 영어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서툴지만 영어로 손 짓 발 짓 하며 영상을 보여주고 선물과 영상도 보여주었고 점심도 먹을 수 있었다.

 

그 뒤 우리들은 차를 타고 약 5시간 정도를 달려 캄보디아의 씨엔립이라는 도시의 식당에 도착하여 수끼를 먹었다. 캄보디아에 차음 도착했을 때도 수끼를 먹었지만 언제 먹든지 맛있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은 후 앙코르왓 근처의 호텔에 머물게 되었고 허빈 간사님과 함께 마트를 찾아 간식거리를 사먹으러 갔다. 가는길이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몰래 사먹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둘이서만 먹는 것은 정말 재미있고 행복한 일 이었다. 다음날 우리들은 일찍 일어나 어제 저녁을 먹은 곳에서 아침을 먹고 앙코르왓을 방문하게 되었다. 앙코르왓을 들어가기 전에 앙코르톰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원래는 이곳을 다 둘러보고 가야하지만 시간 관계상 우리들은 다 둘러보지 못하고 바로 앙코르왓으로 향했다. 다음에 와서 한번 둘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앙코르왓에서 왕이 올라갔던 곳을 올라갔다. 계단이 매우 가파르고 높아서 무서웠다. 왕들은 어떻게 올라 갔는지 정말 신기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돌을 조각한 것이 너무 정교해서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엄청 힘들었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앙코르와트의 하나를 들린 후 차를 타러 가는 길에 6,7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3개에 1달러 라고 말 하면서 우리에게 사달라고 구걸했다. 사고 싶었지만 가방을 차에 두고 내려서 살 수 없어서 안타까웠고 불쌍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중간에 쇼핑몰에 들려서 BBQ라는 치킨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나라 치킨 집이라서 그런지 K-POP노래가 흘러 나왔다. 너무 반갑고 들떠서 따라 흥얼거리고 몸을 들썩였다. 그 후 우리들은 숙소에 돌아와서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 우리는 마지막으로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라는 곳을 방문 했다.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던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고 이 나라에 이런 아픔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행학교를 통해서 적어도 사람들의 외적인 면을 중시하는 그런 아이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마 나는 이때까지 사람의 내면보다는 외면을 중시하는 그런 아이였던 것 같다. 이런 내 모습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1213일 동안 내 책임에 매우 충실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내가 맡은 역할에 대한 책임은 내가 끝까지 맡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또한 꼭 해외여행이 유럽같이 모든 사람들이 원하고 가고 싶은 곳이 아니더라도 잘 살지는 못 하지만 의미있는 이런 여행을 한 번쯤은 와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 한다. 다음에 한 번 더 와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