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 ⑦]
경상대부설중2 정다운
-사전교육-
엄마가 제일 처음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에 가는 것을 추천했을 때, 좀 힘들 것 같아서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설명회에서 공정여행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가기로 결정했다. 여행을 가기 전, 그 나라의 사람과 만나서 서로 문화를 교류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사전 교육을 했었다.
1차 교육 때는 액션 러닝을 통해서 팀워크 훈련을 했다. 그 때 백종옥 선생님께서 오셔서 도와주셨다. 먼저 ‘아이스 브레이커’라는 모르는 사람끼리의 어색함을 없애는 게임을 했다. 제일 먼저 ‘까꿍’이라고 인사하고 상대방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팀명도 정하고, 팀 구호도 정했다. 여기서 두 명을 제외한 같이 가는 사람을 모두 보았다. 솔직히 같이 가는 허빈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여자인데 남자인 줄 알았다. 옷 입는 것도 , 머리 길이도 남자처럼 보여서 그렇게 착각했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여자 목소리고, 엄마가 저 선생님이 여자라고 해서 여자인 줄 알았다. 첫 인상은 다 가지 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시끄러워 보이는 인상, 어떤 사람은 조용하고 공부 잘할 것 같은 인상....... 액션 러닝을 통해서 새로 만난 친구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팀워크가 잘 맞아야 여행에서도 편해지고,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 주 토요일,2차 교육을 받았다. 1시간동안 교수님이 오셔서 공정여행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우리가 가는 여행이 ‘공정 여행’ 이기 때문이었다. 공정 여행이란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게, 공정하게 돈을 내고 가는 여행을 말한다. 이 때 우리는 그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가는 동남아권 사람들은 사람끼리 친하다. 이웃끼리, 친척끼리 친하다. 그래서 우리도 이 사람들 속에 어울려야 한다고 배웠다. 솔직히 나는 이 때 걱정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친척끼리도 잘 어울리지 않고, 모르는 친척도 수두룩한데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 다음 한 시간은 이정기 목사님께서 다문화 시민성과 글로벌 역량 강화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사전 설명회 때와 같은 내용이었다. 여기서 글로벌 시대의 글로벌 인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이를 강화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3차 교육에서는 사천 다문화 센터에서 의사 선생님께 해외에서의 건강관리에 관해서 교육을 받았다. 뎅기열, 말라리아, 발열, 설사 등 발생할 수 있는 질병과 응급 처치법에 대해서 배웠다. 역시 어딜 가든 건강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이 아플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다음 한 시간은 이정기 목사님께서 앞에 강의하시던 것을 마저 하셨다. 앞에 다녀온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그것을 보며 살짝 기대가 되고 설레었다.
마지막 교육은 영상편지 촬영과 역할을 분담하였다. 우리는 인도네시아 4집, 캄보디아 9집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영상편지를 촬영하게 되었다. 사천 다문화 센터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을 만났는데 다 20대였다. 그리고 김창완 교수님께서 오셔서 이주민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명씩 짝을 지어서 활동을 했다. 내 짝은 캄보디아 깜뽕짬의 시골에서 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11명의 영상편지를 촬영했다. 사전 교육을 받기 전, 뭔가 막막하기만 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사전 교육을 받고 난 후 거기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충 감이 잡혔다. 교육을 다 마치고, 일주일 동안 외국을 갈 준비를 하였다. 방학숙제도 해 놓고, 옷도 챙기고, 준비물도 빠뜨린 것이 없는지 확인도 해보고............ 그렇게 하다가 토요일 만나서 송별회 준비와 이주민 집에 가져다 줄 사진 정리를 하고, 일요일 밤 YMCA에 모여서 송별회를 했다.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차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인천 공항으로 가는 길, 짐이 많아서 불편했지만 나름 괜찮았다. 밤새도록 달려서 새벽에 인천 공항에 도착을 했다. 인천 공항에서도 비행기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그동안 환전소에서 루피아와 달러로 환전도 해 보았다. 나는 그 때 처음 환전을 해 보는 거라 신기하고 새로웠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10시 20분 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홍콩을 거쳐서 인도네시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CATHAY PACIFIC이라는 항공을 이용하였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기다리고 하니까 온몸이 쑤셨다. 늘 느끼는 것인데 공항에만 가면 거지꼴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월요일 하루 종일을 비행기를 탔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는 월요일 밤에 도착했다. 거기서 기사 아저씨를 만나서, 차를 탔다. 내가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는 라마단 기간이었다. 그 기간에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은 낮에는 금식을 하고 밤에만 음식을 먹는다. 우리가 피흐리라는 사람의 집에 도착하면 아마 새벽4~5시 쯤 너무 이를 거라고 KFC에서 조금 있다가 갔다. 그렇게 월요일도 차에서 잤다. 그동안 내가 씻지 못하고 물도 몸에 맞지 않아서 몸에 두드러기도 났었다. 드디어 피흐리씨네 집에 도착! 피흐리씨 마을은 정말 정이 넘치는 마을 같았다. 라마단 기간이라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도 우리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해 주었다. 그 마을 사람들도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거기서 피흐리씨의 아버지, 어머니, 여자형제 두명을 보았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피흐리씨 영상편지를 보여 드렸다. 피흐리씨 어머니의 얼굴에 아들을 그리워하는 것이 보였다. 그 후 마을 아이들에게 풍선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을에 나가서 보는데, 어떤 아저씨가 곡식을 말리려고 곡식을 펴고 있었다. 해 보고 싶어서 아저씨에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힘들었다. 우리가 그러는 동안 다른 언니들은 피흐리씨 집에서 씻거나 동네 사람들의 집에서 씻었다. 그래도 끝내기는 다 끝냈다. 다 하고 동네 아이들과도 놀아주고, 고등학생 언니들과도 만났다. 같이 사진도 찍고, 메일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하는데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맛이었다. 밥도 한국밥과는 다르게 뭔가 나폴나폴거리고 음식도 맵고 짠데 안 짠 것 같은 처음 맛보는 맛이었다. 라마단 기간이라서 우리만 먹어서 미안했다.
그 다음으로, 수립또라는 사람의 집에 갔다. 수립또씨는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괴롭혀서 견디지 못하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고 한다. 수립또씨 집에 가는데 르바란 이라는 명절기간이라 차가 심하게 막혔다. 게다가 기사 아저씨가 자기 동네인데도 길을 찾지 못하였다. 결국 수립또씨가 우리를 데리러 와서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서 못 씻은 사람들은 씻었는 데,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너무 뻑뻑해져서 빗도 들어가지 않았다. 역시 비누가 없으면 머리가 뻑뻑해 진다. 씻고 난 후 밥을 얻어 먹었다. 그집에는 피흐리씨네 집과 조금 요리가 달랐다. 그러나 비슷했다. 나는 그 집의 두부요리가 독특했다. 그 집에서도 풍선을 만들어 그 마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마을 아이들도 풍선을 받자 아주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나도 기뻤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많아 풍선을 다 써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풍선 대신 볼펜을 나누어 주기로 했다. 수립또씨네 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차를 탔다.
밤 12시, ‘진주 학원’에 도착했다. 진주학원은 ‘야니’라는 사람이 만들었고, 한국으로 일하러 갈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학원이라고 한다.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우리를 만나러 왔다. 그 때 인도네시아 교육감정도 되시는 아주 바쁘신 분과 기자가 와서 보고 있었다. 문화 교류를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이 많이 와서 한국 학생 한명, 인도네시아 학생 두명에서 ᄍᆞᆨ을 지었다. 내 짝은 라이라 따 나 제와 미카사리였는데, 둘 다 나보다 언니였다. 간단하게 라라 언니와 이카 언니라고 불렀다. 먼저 서로 상대방에게 궁금한 것을 영어로 물어보았다. 그리고 이야기도 했다. 그 때 두 언니가 인도네시아 언어에 대해 살짝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쓰는 것은 영언데,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모르겠다. 게다가 영어로 써도 내 눈에는 꼬불꼬불 글씨로 보인다. 안녕이라는 말은 슬라마빠기 라고 하면 된다고 하고, 헤어질 때는 슬라마띵기 라고 하면 된다고 한다. 우리는 문화 교류를 위해서 한국 전통 탈을 준비했다. 그래서 탈 칠하기를 했다. 모두들 알록달록하게 색칠을 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탈이 탈에다가 피어싱을 그린 것이다. 참 기가 막힌 아이디어이다. 내 짝은 평범하게 알록달록 색칠을 했다. 내가 생각할 때 라라언니와 이카언니는 웃는게 참 예쁜 것 같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다. 라마단 기간이라 인도네시아 학생들은 음식을 먹지 않았다. 원래 라마단기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낮에 다 같이 굶고, 밤에 다 같이 나누어 먹자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가난한 사람과 나누어 먹는다면,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지만 나누지 않는다면 이 문화는 별로 좋지 않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수영장에 갈 준비를 했다. 먼저 가기 전,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SMK N.5와 SMK N.4라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학교를 방문했다. 그 나라에서 고등학교를 SMK라고 한다. 학교가 경사면에 있어서 계단처럼 되어 있었다. 그리고 층수도 1층밖에 었었다. 그러나 넓기는 엄청 넓고, 좋았다. 기술 고등학교하서 기술과 관련된 것들도 보였다. 그 다음,진주학원 분점을 낸 곳에 가 보았다. 그냥 학원같이 생겼는데,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분점을 냈다고 한다. 일반 교실과 다를 것이 없었는데, 천장이 우리와 달라서 신기했다. 그리고 진주학원에서 나와 드디어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장에서 인도네시아 학생들과 수구를 했다. 그런데 우리가 한골차이로 졌다. 져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그 때 여자들은 수영할 때도 긴 옷을 입고, 히잡을 썼다. 불편해 보였지만, 그 사람들은 그게 문화라서 아무렇지도 앟게 본다. 오히려 우리를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물속에서 놀고, 인도네시아 학생들과 저녁을 먹었다. 그 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밤은 라마단 기간의 끝이었다. 그래서 르바란이라는 명절이자 축제가 있었다. 우리는 집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것을 구경하였다. 집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것은 처음 봐서, 신기하고 좋았다. 그 후,책상에 앉아서 내일 일정 번경에대한 이야기를 했다. 르바란기간 때문에 교통체증이 심해서 브루모 화산을 가지 말자는 것 이었다. 그래서 브루모화산을 가지 말고, 진주학원에서 조금 쉬다 가기로 했다. 그 때, 내 앞으로 쥐짝(도마뱀)이 위에서 떨어졌다. 진짜 완전 놀랐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진주학원에서 쥐도 보고, 도마뱀도 보는 등 참 많은 것,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한 것 같다.
목요일, 진주학원에서 쉬고, 코코넛도 먹어보았다. 코코넛은 밍밍한 맛이 났었다. 내가 생각하던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나는 코코넛이 귤처럼 새콤달콤할 줄 알았다. 또, 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어 놓았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밤방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출발했다. 밤방은 한국에 온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아서 부모님이 아주 반가워 하셨다. 그리고 명절이라서 친척이 모두 다 와있어 사람이 버글버글했다. 밤방씨네 집에서 저녁으로 아주 매운 카레를 먹었는데, 도저히 사람이 먹지 못할 맛 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밥만 먹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음식을 손으로 먹어 보았다. 손으로 먹으면 기분만 조금 찝찝할 뿐 밥도 흘리지 않게 되고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밥을 다 먹은 다음, 유치원 앞 놀이터에서 별을 보았다. 거기는 별이 참 많았다. 진짜 그림에 나오는 별이 참 많이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별이 그렇게 많은 것은 처음 보았다. 또 차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이번에는 발리로 가기 위해 자바섬의 끝으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항구에 도착했다. 거기서 목욕을 했다. 인도네시아는 화장실과 씻는 곳이 언제나 붙어있다. 왜냐하면 변기가 볼일을 본 뒤, 물을 부으면 내려가는 형태의 변기이기 때문에 물을 늘 담아둔다. 그리고 거기서 왼손으로 닦기 때문에 손을 씻기 위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기에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인사할 때는 왼손을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 처음에는 이 문화가 더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게 더 깨끗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는 화장실 이용도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참았다가 호텔에서 화장실을 갔다. 왜냐하면 일반 가정집에는 휴지를 쓰면 막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휴지를 못 쓰는 것은 너무 힘든 것 같다. 씻을 때도 샤워기 대신 바가지를 사용했다. 늘 샤워기를 쓰다가 바가지를 쓰니까 불편했다. 특히 머리를 감을 때 깨끗하게 못 헹궈서 계속 헹구고 있었다. 그러나 화장실과 씻는 곳이 붙어있어서 편하기는 편하다. 다 씻은 뒤, 아침으로 ‘나시고랭’이라는 볶음밥을 먹어보았다. 오랜만에 내가 먹을 만 한 것을 먹은 기분이었다.
배를 타고 발리섬으로 이동했다. 자바섬을 떠나는데, 자바섬에서의 추억하면 차를 많이 탄 게 제일 많이 떠오른다. 우리는 밤을 차에서 지낸 적이 많다. 그래서 차에서 친구들과 친해지고, 놀았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잘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이렇게 차를 많이 탈 일이 없다. 서울까지 가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배를 타고, 발리 섬에 도착 했다. 발리에서도 점심으로 나시고랭을 먹었다. 점심 먹었던 곳에 바다가 있었는데, 나는 발만 담궈 보았다. 파도가 높기는 많이 높았다. 그래서 많이 들어가지는 않고, 구경만 했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출발했다. 호텔에 가기 전, 따나 롯 사원이라는 곳에 들렸다가 갔다. 거기는 물이 들어오면 가지 못하고, 물이 빠져 나가면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원의 건물만 보았다. 그런데 사원이 무슨 절벽 같은 곳에 있었다. 그곳도 역시 바다라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는데 우리가 점심에 갔던 해변보다 파도가 더 세고, 물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 사원을 보고, 호텔로 갔다. 호텔을 처음 봤을때는 별로였는데, 안은 정말 시설이 좋았다. 한식집에서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고, 호텔 수영장에 들어갔다. 수영장에서 놀다가 밀린 빨래도 해 보았다. 빨래하는 것은 힘들다. 빨래를 늘 하시는 어머니가 대단하다.
발리에서 있는 토요일, 카페테리아 같은 곳에서 아침으로 오믈렛을 먹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오믈렛과는 다르게 빵도 있고, 과일도 있었다. 그리고 방에서 놀다가, 점심을 먹고 쇼핑몰에 쇼핑을 하러 갔다. 쇼핑몰에서 친구들과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샀다. 그리고 나서 울루왓뚜 사원에 갔다. 여기는 발리의 7대 명소 중 가장 유명한 곳이라고 아는 사람한테 들은 적이 있다. 이 사원에 들어가기 전, 빠당빠당 비치라는 해변가에 갔다가 나왔다. 거기는 모래알이 정말 작았다. 그리고 울루왓뚜 사원에 들어갔다. 사원은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노란색 띠를 매고 들어갔다. 깨짝댄스를 보려고 했는데, 표가 없어서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울루왓뚜 사원의 절벽에서는 빠삐용 이라는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울루왓뚜 사원의 원숭이도 유명한데, 원숭이가 관광객의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들고 도망가 버린다고 조심하라고 안내판에 적혀있었다. 그리고 원숭이를 보았는데, 역시나 어떤 사람의 선글라스를 훔친 모양인지 선글라스를 들고있었다. 나는 내 안경을 벗어서 주머니속에 넣었다. 울루왓뚜 사원을 둘러보고, 저녁을 먹으러 짐바란이라는 곳에 갔다. 그 곳은 정말 비싼 곳이었는데, 경치가 멋졌다. 해안가에 있어서 분위기가 좋았다. 꼭 신혼부부들이 올 것 같은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새우 요리가 맛있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에서의 일정이 끝났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숙소는 나름 괜찮았다. 진주학원도 쥐 나왔던 것만 빼면 괜찮았고, 발리에서 호텔은 아주 좋았다. 특히 수영장이 좋았다. 내가 만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다 착하고, 친절한 것 같다. 그리고 모두들 웃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보다 행복지수가 높은 것일까? 잘 사는 나라라고 행복하지는 않다. 오히려 불행한 것 같다. 선진국일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진주학원에서 고등학생들과 만나서 같이 어울린 것이 제일 인상 깊었다. 그 이유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서로 잘 어울려 놀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일요일 아침, 새벽에 차를 타고 발리 공항으로 갔다. 발리 공항에 내려 운전기사 아저씨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그런데 비행기 시간을 빠듯하게 가서 진짜 공항에서 처음으로 미친 듯이 뛰어보았다. 겨우 비행기를 타고, 말레시아로 갔다. 그런데 말레시아에서는 환승이 아니라 내려서 말레시아 쿠알라룸프에 들어갔다가 캄보디아로 가는 것이라 복잡했다. 그리고 기다렸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로 갔다. 그리고 캄보디아 공항에서 김기대 선교사님을 만났다. 차를 타고 수끼라는 음식을 먹으러 갔다. 수끼는 샤브샤브랑 거의 똑같은 음식이다. 그리고 우리가 머무를 선교사 호텔에 갔다. 그 호텔은 선교사님이 사용하는 호텔이라 조용히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거기서 우리를 도와 줄 “나릇“오빠를 만났다. 서로 인사 하고, 방에 들어가서 쉬었다.
월요일 6시, 차를 타고 미앗 사먼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의 집이 완전 시골이었다. 가는 길에 메콩강도 건너고, 울퉁불퉁해서 멀미나고, 하여튼 고생고생해서 늦게 그 사람의 집에 도착했다. 거기서 가족들에게 영상을 보여 주고,다시 영상을 찍었다. 그 집에서 기르는 돼지를 보았다. 처음으로 돼지를 가까이에서 보았는데, 너무 징그럽게 생겼다. 그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이 나라 음식도 인도네시아 음식이랑 비슷했다. 이 두 나라에서 닭고기를 많이 보았는데, 손님이 오면 닭 한 마리를 잡는다고 한다. 미앗 사먼의 아기도 보았는데,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다음 집으로 향하였다. 다음 집은 속홈의 집, 내 담당 집이었다. 그래서 가기 전에 긴장도 많이 했다. 가는 길, 정말 시골길이라서 울퉁불퉁했다. 가는 길에 소 떼도 보았다. 이 나라에서 소를 참 많이 본 것 같다. 미앗 사먼의 집보다 더 심한 것 같았다. 그리고 속홈씨네 집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거기서 스케치북을 넘기고, 나릇이 가족들에게 읽어 주었다. 그 집에서 드래곤아이라고 인도네시아에서 먹어보았던 과일을 준비해 놓았다. 다시 편지를 촬영하고, 길이 험해서 시간을 많이 지체해서 오래 있지 바로 갔다. 물론 내가 가지고 온 볼펜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음 집에 가는데, 비가 왔었다. 그러다가 그만 차가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차가 구덩이에 빠져서 차를 밀어내는데 어른들과 남자아이들이 비에 다 젖어버렸다. 그래서 네 번째 집은 가는 것을 포기하고, 세 번째 넹 비스나라는 사람의 집에 겨우시 갔다. 역시나 거기서도 사람들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저녁시간이라 우리가 들고온 컵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갔다. 네 번째 로반나의 집에는 가지 못해서 로반나의 형이 선물과 usb를 받아 가려고 내일 프놈펜으로 온다고 했다. 그래서 김기대 선교사님께 드렸다. 그날 밤,열대 과일을 사서 까 먹었다. 나는 망고스틴이 제일 맛있었다. 보라색 껍질 안에 하얀 알갱이가 들어 있는데, 정말 맛있다.
화요일은 월요일보다 도로 상황이 좋았다. 그러나 어제 나릇이 차를 뺀다고 비를 맞아 심한 감기에 걸렸다. 그래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일단, 나는 아침으로 캄보디아 쌀국수를 먹었다. 베트남 쌀 국수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맛은 맛있었다. 그리고 영상편지를 배달하러 출발! 화요일에는 4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만 스케치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스케치북에 우리를 소개하고, 무슨일을 하는지 그 나라 언어로 적혀있는 중요한 물건이다. 그래도 다행히 나릇이 대충 설명해 주기로 했다. 제일 먼저 히헷 로앗스티에라는 사람의 집에 갔다. 그 사람의 집은 생각보다 꽤 좋았다. 아기가 너무 어려 보였는데, 아기가 아빠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남편의 영상편지와 사진을 보여주자 부인이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그리울까? 특히 아빠 얼굴도 모르는 아기가 불쌍하다. 영상 편지를 보여주는데 아기는 자꾸만 울고 있었다.
그 다음, 나릇이 다니는 학교이자 김기대 선교사님께서 세운 이삭학교에 갔다. 거기서 태양열에너지를 이용해 열을 내서 밥하는 기계를 보았다. 이것을 만들게 된 까닭은 밥을 하면서 나는 좋지 않은 연기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병에 걸리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이것을 만들어 일반 가정집에 보급한다고 한다. 이삭 학교는 미래의 이장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로 일 년에 50달러정도 받고, 곡식을 가지고 와서 그 곡식은 자신이 먹는다고 한다. 이삭 학교를 구경하고, 속체이씨네 집에 갔다. 속체이씨는 잠시 휴가를 받아 캄보디아 집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 놓았었다. 우리는 속체이씨 집에서 점심을 얻어 먹었다. 거기서 속체이씨 아버지를 만났다. 속체이씨 아버지의 다리는 가짜다리라고 한다. 옛날에 킬링필드시절 심어놓았던 지뢰를 밟아서 다리 한쪽이 잘렸다고 하신다. 그런데 별로 상관하시지 않는 것 같았다. 그 후, 신혼집에 갔다. 그 집은 관 짜는 집이라서 관이 있었는데, 뭔가 섬뜩했다. 그 외에 린라니, 이어잔랏씨네 집에 가서 영상편지를 보여 주고, 선물을 주었다.
세 번째 날에는 아침식사를 하고, 나릇이 몸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마지막집에 같이 가 주지 못했다. 마지막 집은 반 렝사이라는 사람의 집이었다. 반 렝사이네 집은 교과서에서만 보던 높게 지은 집이었다. 솔직히 이 집 가서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었다. 스케치북도, 나릇도 없는데...... 그런데 다행히 그 집의 여동생이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영어로 말하고, 영상을 보여주고 다시 촬영하였다. 그 집에는 옥수수를 집에 쌓아두고 있었다. 신기했다. 나도 옥수수 좋아하는데....... 옥수수가 찌찌도 않았는데 노래서 신기했다. 이제 이 집이 영상편지를 전달해 줄 마지막 집이었다. 이제 씨엔립으로 출발!
씨엔립으로 가는 데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호텔에 갔다. 호텔에서 티비를 돌리던 중, 반갑게도 한국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서 보았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툼을 보러 갔다. 가이드도 만났는데, 가이드가 한국말을 못하고 영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래서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 들었다. 앙코르 와트는 성을 말하고, 앙코르 툼은 도시를 말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어떤 벽에 있는 조각을 보았는데, 한 여자 때문에 캄보디아사람들과 베트남사람들이 싸웠다고 한다. 그래서 캄보디아가 이겨서 여기 그것을 조각해 두었다고 한다. 사원은 경사가 85도정도로 아주 가팔라서 올라 갈 때나 내려갈 때 무서웠다. 그러나 위에서 밑을 보니 경치가 아주 좋았다. 앙코르 툼이나 앙코르 와트 사원에는 다 여자가 이상한 동작을 하고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그런데 거기에 다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여자를 조각한 것은 여신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지나는 길에 코끼리를 보았다. 이리 가까이에서 코끼리를 본 것은 처음이라 코끼리가 무서웠다. 밟힐 것 같기도 하고.... 앙코르 와트 사원은 완전 영화속 한 장면이었다. 성이 이끼나 나무에 둘러싸여 있었다. 가이드가 스폭이라는 나무도 가르쳐 주었는데, 그 나무는 정말로 단단했다. 앙코르 와트 사원을 덮고 있는 나무는 살아 있다. 문제는 그 나무를 잘라내면 사원이 무너져버리고, 계속 두면 나무가 사원을 완전히 뒤덮어 버리기 때문에 어찌 하지 못한다고 한다. 앙코르 와트는 정말 숲속의 성 같은 곳이었다. 견학을 마치고 프놈펜으로 돌아왔다.
캄보디아의 집은 무언가가 섞인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이유는 네델란드와 프랑스가 식민지로 삼았을 때 문화가 들어와서 그렇다고 한다. 실제로 바게트같은 빵도 잘 만든다고 한다. 프랑스의 문화를 들여와서 그렇다. 진짜 지나갈 때 자세히 보면 집이 조금씩 서양적이게 생겼다.
마지막으로 캄보디아를 돌았다. 차에 모든 짐을 다 넣고, 뚜울슬렝 박물관에 갔다. 뚜울슬렝 박물관은 킬링필드 시절 사람들을 고문하던 장소를 박물관으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장소가 옛날에는 고등학교였다. 킬링필드는 크메르루즈라는 사회주의 사람들이 나라를 바꾸기 위해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을 때 붙어진 것이다. 그 때 폴 포츠라는 사람이 주도했었고, 그로 인해 캄보디아 인구의 삼분의 일이 죽었다. 그래서 캄보디아에 가면 노인들이 잘 없다. 하여튼 그 때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한 고문을 받았는지, 얼마나 끔찍하게 죽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 때 있있던 사람들의 사진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표정이 어두워서 무서웠다. 그리고 그 때 수용소에 잡혀 있다 나온 화가가 그린 그림도 있었고 죽은 사람 사진도 있었다. 정말 섬뜩하고, 안타까운 역사다.
마지막으로 고엘 공동체에 가게 되었다. 거기서 한정민 선교사님을 보았다. 천연염색을 해서 사람들에게 옷을 파는 것이다. 한국에 와서 고엘 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검색해 보았더니 히브리어로 친족이나 친척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 고엘 공동체로 의해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고, 그로써 더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 그래서 나도 기념품으로 부엉이 핸드폰 고리 두 개를 샀다. 내 동생을 주면 아주 좋아할 것 같아서... 그 후, 시장에 갔다. 시장에는 30분정도 밖에 있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선물도 사고, 기념품을 샀다. 그리고 김기대 선교사님께서 점심으로 피자를 사 주셨다. 그리고 나와서 선교사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
캄보디아에서는 앙코르 와트 사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나는 솔직히 평소 앙코르 와트 사원을 한번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다 기회가 되어 가 보게 되었다. 나는 앙코르 와트를 교과서에서 처음 보았을 때 정말 놀랍다는 생각, 그 조각을 꼭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보니 정말 좋았다.
외국에 가서 외국돈을 보았을 때, 한국 돈과 다르고, 가격도 확 달라지기 때문에 물건을 살 때 돈 계산이 빨리 되지 않아서 조금 힘들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에서 루피아, 캄보디아에서 달러와 리엘을 보았다. 각 나라별로 돈은 그 나라를 잘 나타낼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또, 외국에는 한국과 시간이 다르다. 외국에 갔을 때는 자는 시간 개념이 사라져서 시차 적응하기가 쉬웠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들어오고 고생 좀 했다. 내일 학교를 가야 하는 데, 새벽 1시가 되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개학 날 힘들었다. 시차 적응하는 게 단 두 시간 가지고 이리 힘들 줄 몰랐다.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는 차이점이 있었다. 종교도 달랐고, 문화도 달랐다. 캄보디아는 불교라서 여자들이 히잡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인사할 때 불교식으로 두 손을 모아서 인사한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었다. 사람들이 잘 웃는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잘 웃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다. 우리보다 더 행복한 것 같아서 조금은 부러웠다.
공정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참 많다. 먼저, 구걸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구걸하는 사람은 싶어서 그럴까? 아니다. 우리도 부모님 잘 만나서 이렇게 사는 것이지 우리도 아프리카 이런데 태어나면 구걸뿐만 아니라 굶어죽는 사태까지 생길 수 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여행학교는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는 학교 같았다. 2주간 여행학교에서 다른 나라 사람과도 말이 잘 통하지 않지만 같이 어울리는 법,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방법 등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참 다양한게 있으니 우리나라에만 있을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공정여행은 나에게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으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있음으로 나중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공정여행과 일반 여행은 분명히 다르다. 공정여행은 공정하게, 그 나라 사람에게 도움이 되게 가는 여행이다. 우리 세계는 점점 다문화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문화가 다르다고 외국인을 무시하면 안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강조하지 말고 그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방문 가정 중에서는 피흐리씨네 가정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왜냐하면 그 곳의 아이들과 제일 잘 놀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여행 기간 중에는 중간 중간 못 씻어서 두드러기가 나고 찝찝한 것이 제일 불편했다. 씻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완전히 수용하지 않고, 우리들끼리 어울린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행학교를 통해, 내가 커서 이런데 선교사로 와서 아이들에게 음악도 가르치고, 미술도 가르치고, 아픈 곳도 치료해 주어서 아이들을 웃게 해 주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여행학교는 나에게 참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