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 ⑧]
진주동중1 이태연
-사전교육-
-인도네시아-
진주학원은 지금까지 방문했던 어느 집도다도 깨끗했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자고 다음 날 인도네시아 고등학교언니 오빠들과 우리랑 같이 문화교류를 했다. 제일 처음 교육을 받고 같이 탈을 만들고 점심을 먹고 언니, 오빠들이 다디는 학교를 방문하고, 수영장에서 수구를 하였다. 근데 내 파트너 아리사와 풀지는 탈을 교환하고 점심을 먹고 사라져 버렸다. 그런 사람이 나 뿐만 아니라 혜지언니와 민철오빠도 파트너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난 파트너 없는 상태로 오후일정을 보냈다. 인도네시아 고등학교를 방문했는데, 그곳은 한 빌딩이 아니라 여러 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어서 대학 같은 분위기가 났다. 그리고 수구를 했는데 전반전은 우리가 후반전은 인도네시아 팀이 이겼다. 재미있었던 체험이었다.
그날 밤 부루모화산을 갈 것인지에 대한 의논을 했다. 우리는 부루모화산을 포기하는 대신 진주학원에서 오후 쯤에 떠나 밤방이 사는 뿌러워다디에 도착하였다. 밤방은 나의 파트너다. 우리가 이곳에 왜 왔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말로는 소통이 되지 않아 인도네시아어로 미리 적어 놓은 스케치북을 넘기며 설명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이지 몰라 난감했다. 그저 웃고 있자니 뭔가 쑥스럽고 민망했다. 밤방은 집을 떠난지 3개월 가량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의 그리움과 걱정이 큰 것 같았다. 나의 역할을 끝내고 나니 뿌듯함을 느꼈다. 저녁을 먹고, 출발 하려는데 밤방씨 어머니께서 과자, 과일, 음료수 등 많은 간식들을 챙겨 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밤새 바뉴왕이 까지 이동하였다. 덜컹 거리는 차에서 하룻밤을 보냈더니 온몸이 쑤셨다. 지나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 밥도 먹고 식당 화장실에서 샤워도 했다. 한국에서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항구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1시간을 이동하고 차로 4시간을 더 달려 발리 섬의 제일 큰도시에 도착하여 호텔에 가니 저녁이었다. 그 날 저녁은 한식집에서 순두부찌개를 먹고 호텔에서 쉬었다. 다음날 쇼핑몰에 가고 울루와뚜 사원에 갔다. 울루와뚜 사원에는 원숭이가 많이 있었는데 내 앞에 있는 유럽인의 안경을 뺏는 것을 보고 난 안경을 호주머니에다 넣고 지퍼를 잠그고 다녔다. 원숭이들이 안경만 보면 뺏으려 하는 것을 보니 무서워서 허빈 선생님의 등을 꽉 잡고 다녔다. 그런데 울루와뚜 사원의 끝에 절벽이 있는데 그곳의 풍경이 좋았다. 발리에서 하루 더 잠을 자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쿠알라룸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데 이건 환승이아니라 보딩부터 하는 비행기를 다른 것을 타고 다니는 거라, 힘들었다. 그래서 청소부 아저씨에게 물어봤더니, 계속 어디를 가르키며 붙어 다녀서 조금 힘들었다. 어렵게 쿠알라룸프 공항에서 보딩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조금 여유롭게 비행기에 탑승했고 무사히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김기대 선교사님을 만나 ICF라는 선교사님들이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에 갔다. 목사님은 숙소가 인도네시아 보다 더 열악하다고 하셨지만, 인도네시아 보다 침대가 크고 넓어서 좋았다. 짐을 숙소에 내려놓고 “나릇”이라는 오빠를 만났다. 오빠는 영어를 아주 잘했다. 우리들 중 아무도 크메르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중간 통역사 역할을 해 주기로 한 것이다. 목사님과 허빈 선생님, 그리고 우리들이 영어로 무언가를 말하면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크메르어로 전해 주고 또 우리에게는 영어로 이야기해 주었다. 잘 되지 않는 영어지만 대충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캄보디아에서의 첫 식사는 수끼였다. 우리 나라의 샤브샤브와 흡사한 음식이었다.
다음날 메콩강을 건너 넹 비스나외 2명의 집에 방문했다. 책에서만 보던 메콩강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사실 로반나 씨의 집도 방문해야 되지만, 생각보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이동하는 시간이 계획했던 것 보다 많이 걸렸다. 그래서 다음날 로반나의 형이 우리가 머물로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와서 선물과 사진첩 그리고 영상편지가 담겨 있는 메모리를 받아 가기로 했다. 첫 번째 집에서 나릇 오빠가 스케치북의 내용을 외국인근로자의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점심을 먹고, 두 번째 집에 갔다. 그리고 세 번째 집에 갈 때 비가 왔는데 진흙구덩이에 바퀴가 빠져 나릇 오빠와 목사님, 허빈 선생님, 오빠들이 차를 밀어 무사히 넹 비스나의 집에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컵라면을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여행학교 기간 중 제일 힘들었던 날인 것 같다.
다음 날에는 4집을 방문했다. 일정이 매우 빡빡했다. 두 집은 프놈펜에 두 집은 시골에 있었다. 그리고 이삭학교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김기대 선교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이삭학교에서 캄보디아 인들에게 적용기술을 가르친다고 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기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태양열을 이용한 열 제품이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태양열만 가지고 밥을 지을 수 있다고 하셨다. 장작으로 밥을 짓는 캄보디아 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거라 하셨다. 누군가를 위한 삶은 위대한 것 같다. 이삭학교를 견학하고 시골에 있는 두 집에 갔다. 시골에 있는 두 집중 속체이씨 집에서 벼 베기 체험을 했다. 벼 베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허리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조금만 하다가, 발을 씻고 밖에 나갔더니 언니들은 허빈 선생님이 오토바이를 태워 주고 있었다. 그러나 난 시간이 없어서 오토바이를 못탓다. 재미있어보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가는 집이 이어잔랏 집인 줄 알았는데 린라니 집이었다. 사진첩을 바꾸러 가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혜지언니와 나는 사진첩을 바꾸러 가기 위해 신호위반을 했다. 린나니 집은 도시빈민가에 있었다. 촌에 있는 집들 보다 10배는 열악해 보였다. 좁은 골목에 오물들이 있었고 조그만한 집들이 빽빽하게 있었다. 오래 머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선물과 영상만 전달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채 이어잔랏 집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만찬을 제공하여 저녁을 먹고 왔다. 우리 먹은 것 중 아주 큰 민물고기가 있었는데 그 고기가 굉장히 비싼 고기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다음날 씨엠립으로 이동 하였다. 앙코르왓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 날은 나릇오빠가 감기가 심해져서 우리와 동행하지 못했다. 씨엠립에 가는 도중에 “반렝사이“ 집에 갔는데 다른 집은 고상가옥 2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그 분들은 본인들의 집을 기꺼이 보여주었다. 2층이라 더 시원했다. 그리고 몇시간을 달려 씨엠립에 도착했고 그곳에서도 역시 수끼를 먹었다. 그리고 숙소에 가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앙코르왓을 봤다. 그곳에는 80도 정도 되는 탑이 있었는데 그 탑에서 올라갈 때 그리고 내려갈 때가 제일 무서웠다. 그리고 나무뿌리를 휘감고 있는 사원도 봤다. 세계문화유산인데 많이 망가진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그리고 신기하기도 했다. 앙코르왓을 견학하고 다시 프놈펜으로 돌아와 하루를 쉰 다음 공항으로 향했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역시 한국이 최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