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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언론보도자료

[국경 넘은 사랑의 배달부-②]돌발 상황 딛고 첫 방문지 일정 무사히 마쳐

인도네시아 첫 여정부터 '삐끗'
2010년 09월 17일 (금) 15:21:26 허귀용 기자 enaga@news4000.com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한 '사랑의 배달부'가 화물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랑의배달부'영상편지 싣고 국경 너머로 에서 이어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을 빠져 나오자, 현지인 아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사천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아지는 당시에 이정기 센터장으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던 계기로 계속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해마다 아지는 ‘사랑의 배달부’의 가이드와 운전기사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는데, 이번 여정에도 동참했다.

반가움도 잠시 아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 인도네시아에서 우리의 자가용이나 다를 바 없는 아지의 차량이 자카르타 공항으로 오던 중 다른 차와 접촉 사고가 일어나 차질이 생겼다.

수년 간 ‘사랑의 배달부’를 이끌어 온 베테랑 이정기 센터장도 갑작스런 돌발 상황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센터장과 아지가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사이 나머지 사람들은 더위와 허기에 지쳐갔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 센터장은 아지의 도움으로 다른 렌트카 회사의 차량과 운전기사를 구했다. 하지만 여행 경비에 구멍이 생겼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이전 아지에게 렌터카 비용을 미리 지불했는데, 다시 비슷한 금액을 렌터카 비용으로 지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 물론 아지가 받았던 돈을 다시 돌려주면 별탈은 없다. “며칠 뒤 다시 합류할 때 돈을 돌려주기로 아지와 약속 했다”며 이 센터장은 우리에게 알려줬다.

아지 차량의 접촉사고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만, 베테랑 이정기 센터장이 해결하면서 우리 차량은 일정대로 첫 방문지로 향했다.(맨 오른쪽 뒤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지다)
‘사랑의 배달부’ 첫 일정부터 순탄치 않았지만, 쉽게 해결 되면서 우리를 태운 차량은 인도네시아 첫 방문지로 향했다. 첫 가정은 이주노동자 부나완부왕의 부모님과 부인이 사는 집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3시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자카르타 공항을 빠져 나오자 도로 양쪽과 한 가운데로 줄 지어 뻗은 시원스런 야자수가 멋진 광경을 연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카르타로 들어서자 심한 교통 체증과 함께 차량과 오토바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매연이 코를 찔렀다. 창문을 열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자카르타 시내 중심가를 구경하는 사이 우리 차량은 어느 듯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중심지인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의 고속도로는 서쪽에서 동쪽을 연결하는 한 개 노선뿐이다. 그러다보니 심한 교통체증으로 고속도로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다. 물론 고속도로는 유료다.

인도네시아 고속도로는 평소에도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특히 심각한 자동차 매연으로 차량의 창문을 열수 없었다.
자카르타에서 부나완부앙 집까지의 거리는 55.5km. 우리나라에서는 1시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고속도로의 극심한 교통체증과 비포장 같은 도로 환경 때문에 3시간 만에 부나완부왕 집에 도착했다.

부나완부왕 집은 이슬람식의 주택으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이 센터장은 “몇 년 전에 처음 왔을 때는 허름한 주택이었지만, 부나완부왕이 한국에서 보내 온 돈으로 새로 지었다”고 했다. 그들이 왜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한국행을 학수고대하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가져 온 부나완부왕의 영상편지를 보고 있는 가족과 이웃들.
차에서 내리자마자 부나완부왕의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친척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는 한분 한분께 일일이 인사를 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영상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각자 맡은 역할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 센터장은 노트북과 사진프린터기를, 이영찬 원장은 스피커 장비를, 최연수씨는 빔프로젝트와 여러 가지 장비를, 그리고 하언이는 우리와 가족들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 담았고 먹보 우준이는 카메라 장비를 챙겼다.

부나완부왕의 영상편지에 울음을 참지 못한 여동생이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부나완부왕의 모습과 목소리가 담긴 영상이 나오자, 몇 년 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20여명의 가족과 이웃들은 환한 웃음으로 반가움을 전했다. 잠시 후, 가족들 사이로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눈시울을 붉히며 연신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오랫동안 가슴으로 삼켜야 했던 그리움과 아픔의 나날들이 그들의 모습에서 진하게 전해졌다. 직접 볼 순 없어도 화면만으로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달래줄 수 있다는 것이 ‘사랑의 배달부’가 계속 이어지게 하는 동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부나완부왕의 아내와 아들.
동영상 촬영을 담당했던 저는 이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부나완부왕에게 보여줄 가족들의 영상편지를 6mm 카메라에 담았다. 부모님과 삼촌 그리고 여동생,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말속에서 진한 가족의 사랑이 느껴졌다. 조금 전 부나완부왕의 영상편지를 담담하게 바라보던 그의 아내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흘러내리는 눈물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애써 참았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더 이상 가슴속에 담아 두지 못한 듯했다. 주위 친척들의 따뜻한 달램에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했다.

<왼쪽부터>부나완부왕 가족의 영상편지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 부나완부왕의 아내가 영상편지를 촬영하는도중 울음을 참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우리는 부나완부왕 가족들로부터 푸짐한 저녁을 대접받은 다음, 이웃에 사는 어린학생들이 즉석으로 준비한 전통 음악을 들으며 늘 함께했던 이웃처럼 웃고 춤추며 어울렸다. 전자음악과 복잡한 음악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탬버린과 작은 북에서 울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소리는 너무 초라해 보일수도 있겠지만,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음악이었다.

<맨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1-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에 맞춰 가족들과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최연수씨. 사진2-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현지 학생들. 사진3- 전통 음악 공연에 대한 화답으로 성악가 출신이기도 한 이영찬씨가 한국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사진4-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에 맞춰 전통 무예를 선보이고 있는 부나완부왕의 이웃.
작은 축제가 끝나 갈 때 쯤, 한 소년이 내 손을 잡으며 어딘가로 이끌었다.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이웃 주민이 자신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여주겠다며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전통음악과 어우러진 그들 나라의 무술이었는데, 마치 우리나라 태권도의 품세와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그들과 어울리는 사이, 어느 듯 컴컴한 하늘에는 별들이 수를 놓았다. 부나완부왕의 가족들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366km 떨어진 안디 집으로 이동했다.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이웃들.

최연수씨가 한국에서 준비해 온 풍선과 과자를 나눠주자, 마을에서 몰려던 아이들이 신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