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석(대아고 2)
인도네시아(Indonesia)
경남 사천시 어느 한 상가에 나를 포함해 서로 잘 모르는 10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이 학생들이 모인 이유는 공정여행을 체험하기 위해서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해 여행을 다닌다. 그러나 우리가 체험해야 할 공정여행이란 여행자들만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그 여행 장소의 현지인들까지도 기쁘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말한다. 우리가 현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영상편지를 찍어서 배달하고 현지에 계신 이주노동자 부모님의 영상을 찍어서 다시 한국에 돌아와 이주노동자에게 배달하는 것이다. 1월 8일에 가장 중요한 영상편지를 찍기 위해 사천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만나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영상도 찍었다. 영상을 찍을 때 옆에서 이주노동자들의 표정을 지켜보았는데 다들 정말 얼굴만 봐도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공정여행을 가기 전 몇 번의 교육을 받은 후 1월16일 월요일 오전 12시에 사천에서 출발하여 새벽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아침식사를 하고 10시15분에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홍콩공항을 거쳐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 도착하였다. 자카르타의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느렸고 우리나라의 사계절과는 달리 인도네시아는 1년 내내 여름이었다. 그래서 처음 자카르타에 도착했을 때 매우 습하고 덥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일주일간 차량운행을 맡아주실 기사 분을 만났는데 이름은 ‘옹고’이었으며 첫인상은 매우 순하고 항상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1/16)
숙소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데디’씨 집을 방문하여 영상편지를 전달해주고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주고 풍선도 불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탕과 풍선이 흔하지만 인도네시아 아이들은 마치 특별한 선물이라도 받은 듯이 정말 기뻐하였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마지막 영상편지 배달집인 ‘하리만’씨 집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영상편지를 배달해주고 난 후 차를 타고 ‘야니’씨의 집으로 향하여 약 10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렸다. (1/17)
새벽1시 정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야니’씨 집에 도착하여 잠을 자고 난 후 오전에는 ‘야니’씨가 운영하는 한국어 학원에 가서 한국어를 배우는 인도네시아 분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어 시험을 쳐서 일정점수 이상 통과해야만 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인지 학생들이 아주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는 것 같았다. 낮에는 인도네시아 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함께 모여 점심식사도 같이 하였으며 수영장도 갔다. 수영장에서는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도 해보았는데 아직 영어가 서툴러 말문이 쉽게 트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고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저녁에는 인도네시아 시골길을 산책해 보았고 브로모화산에 관한 영상도 보았으며 즐거운 하루를 마쳤다. (1/18)
해 뜬 아침 ‘야니’씨와 인터뷰를 나누고 난 후 점심식사로 ‘야니’씨가 추천해주신 ‘나시고랭’이라는 우리나라의 ‘볶음밥’과 유사한 음식을 먹었는데 맛이 제법 괜찮았다. 점심식사 후 브로모화산이라는 활화산을 구경하기 위해 12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려 밤 11시쯤에 브로모화산 주변 숙소에서 취침을 했다.(1/19)
이른 아침 숙소에서 브로모화산 분화구를 향해 지프차를 타고 올라갔는데 처음 지프차를 탄 느낌은 험한 길에서도 잘 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 지점에서 말을 갈아타고 브로모화산 분화구 바로 앞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몇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마침내 브로모화산의 분화구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 비가 조금 와서 분화구에서 나오는 연기와 끓는 용암을 보기는 힘들었다. 화산을 내려와 점심식사 후 발리 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이동하여 발리 섬에 도착하였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하루밤을 지내고 (1/20)
아침식사를 호텔에서 하고 발리의 7대 명소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울루와뚜 절벽사원’으로 갔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사원 내에 기거하는 원숭이들 장난기 때문에 소지품 간수에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원을 구경한 후 꾸따 해변에 위치한 ‘디스커버리 쇼핑몰’에 가서 기념품들도 사고 꾸따 해변의 바닷물에 발도 담궈 보았다.(1/21)
캄보디아(Cambodia)
설날 하루 전에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거쳐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였다. 캄보디아도 역시 1년 내내 여름이여서 더웠다. 도착 후 바로 숙소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우리를 돕기 위해 서울에 있는 제자교회에서 온 청년팀들과 합류하여 함께 저녁식사로 샤브샤브를 먹었다. (1/22)
설날 아침 7시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새해 첫 아침식사로 차 안에서 바게트빵을 먹었다. 캄보디아는 옛날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바게트빵 굽는 기술이 잘 발달해서 그런지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었다.차를 타고 숲속을 한참 들어가서 캄보디아 첫 방문 가정인 ‘김다라’씨 집을 방문하였다. 영상편지를 보여드리고 ‘김다라’씨의 부모님께서 주신 녹색 바나나도 먹어 보았는데 정말 달고 맛있었다. 그 다음 방문한 ‘속체이’씨 집에서는 처음으로 사탕수수를 먹어보았다. 약간 떫은맛이 나긴 했지만 달콤하고 시원해서 맛있게 먹었다. ‘욱칠’씨의 집에서는 여러 가지 캄보디아 과일을 먹어보았는데 그 중 과일의 여왕이라 불리는 ‘망고스틴’이라는 과일이 가장 맛있었고 기억에 남는다.
‘롤랭’씨의 집까지 영상편지를 배달해주고 저녁에 이삭학교에 갔다. 이삭학교는 학생들이 졸업 후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 농촌을 발전시킬 동네 이장, 지도자로 키우는 것이 학교의 목표이다. 저녁식사로 이삭학교 졸업식 파티에 참석하여 이삭학교 학생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식사가 끝난 후 숙소로 돌아와 선생님께 설날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으로 5달러를 받았다. 해외에서 받은 새해 첫 날 세뱃돈 5달러는 색다르고 의미 있는 세뱃돈 이었다. (1/23)
세계로 여행학교를 마치며...
새로운 날 ‘로반나’씨의 집과 결혼 이주여성의 집인 ‘팔라넷’씨와 ‘에압 슬레이몸’씨의 집을 방문했다. 장시간 차량 이동을 하면서 길거리에 있는 집들의 건축양식을 살펴보았는데 대체적으로 입구가 좁고 긴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옛날에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 프랑스의 건축양식과 비슷한 건물들도 많았다. 밤에 매우 늦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하여 야식으로 한국음식점에 주문을 시켜 김밥과 떡볶이 등을 맛있게 먹었다. (1/24) 다음날은 아침식사를 과일로 배를 채우고 고무나무 숲을 들렀다. 고무나무에 붙어있는 고무를 떼어보았는데 촉감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지만 정말 고약한 악취가 났다. ‘박미영’씨와 ‘손뿐록’씨의 집을 방문 후 앙코르와트를 보기위해 씨엠립으로 향하였다. 저녁에 씨엠립에 도착하여 한인식당을 갔는데 한국인이 정말 많았다. (1/25)
아침에 바쁜 걸음으로 앙코르 와트를 갔다. 앙코르 와트의 ‘앙코르’는 'city' 라는 뜻이고 ‘와트’는 ‘temple’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앙코르 와트를 처음 봤을 때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웅장한 느낌과는 전혀 다르게 허름해 보였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니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러 몰려들었고 건물 구조도 하나하나 너무 섬세하고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또한 깊은 역사도 가지고 있어 과연 세계적인 관광지라 불릴만 했다. (1/26) 눈을 뜨고 간단한 식사를 한 후 프놈펜 왕궁에 들렀는데 캄보디아에 있는 많은 초, 중, 고 학생들이 견학을 와서 그런지 시끌벅적했다. 프놈펜 왕궁에서 나와 옛날에 캄보디아 사람들의 3분의 1이 대학살을 당했다는 킬링필드 시절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뚜올 슬랭(Toul Sleng)’을 갔는데 독재자 폴포츠에 의해 학살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한기가 서려 있는 것 같았다. ‘뚜올 슬랭(Toul Sleng) 견학 후 쇼핑몰에 들러 점심을 먹고 재래시장에 들렀다. 재래시장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해먹, 티셔츠 등 각자 사고 싶은 것들을 할인(Discount)를 하여 구입해 보았는데 한국에서는 잘 되지 않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쉽게 되어서 그런지 물건을 사는 재미가 있었다.
재래시장을 다 둘러 본 후 프놈펜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를 타고 홍콩공항에 밤 11시30분쯤에 도착하여 12시 20분에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1월 28일 새벽5시 쯤 인천공항에 도착 하였다. 2주 동안 여름 속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에 오니 갑자기 너무 추워서 적응하기가 조금 힘들기도 했다. 차를 타고 사천으로 오는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아침식사를 하고 사천에 도착했을 때 낮 12시 정도 되었다.
공정여행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가정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야니’씨의 집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방문했던 가정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우리에게 가장 많이 챙겨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여행 중 너무 오랜 시간동안 차량을 통해 이동했다는 점과 모기가 많다는 점이 불편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에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난 후 뒤처리를 휴지 없이 손으로 해야 한다는 점과 더운 날씨에도 긴바지를 입는 것이 그 나라의 문화라는 점도 조금 불편했고 또 한국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불편해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간 것이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불만은 없다. 만약 동남아를 1주일 정도 여행한다면 한국보다 물가가 대부분 값싸기 때문에 한국 돈으로 10만 원 정도면 부담 없이 편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에 이 공정여행을 다녀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왜냐하면 이제 곧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때문에 입시준비에 신경을 써야 할 때라서 하루하루 공부하기가 바쁘다. 그리고 특히 방학 때는 평소보다 더욱 자기주도적인 학습 시간이 많기 때문에 남들이 열심히 할 때 나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결국 뒤쳐지고 만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2주라는 기간 동안 여행을 다녀오면 그동안 벌어진 간격을 내가 좁혀 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시기였다면 수능 때문에 무조건 공부를 택해야 했겠지만 이제 2학년이 되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기회는 평생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 공정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심하였고 2주 동안의 여행을 다녀온 지금 나는 이 여행을 다녀온 것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지식적인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손으로 밥을 먹는다든지 손으로 화장실 뒤처리를 한다든지 하는 이런 체험을 통해 문화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했던 이 선택이 잘 한 것이라고 생각되고 뿌듯하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홍콩, 말레이시아에도 잠깐 갔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4개국 전부 영어를 사용하면 대부분 말이 통하는 곳이 너무나 많아서 영어의 힘을 실감하게 되었고 영어가 정말 만국 공통어라는 것을 느꼈다. 서로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지만 영어로 대화가 통한다는 점에도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영어를 더욱 열심히 공부 해야겠다는 의지가 굳어졌다.
‘데디’씨, ‘하리만’씨 등 여러 가정을 방문해 영상편지를 배달할 때 마다 부모님을 비롯한 형, 누나, 동생 등 나머지 식구들이 영상편지를 보기 위해 둘러 앉아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영상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영상이 나오는 순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서 인지 ‘잘 지내고 있는지’하는 생각에서 인지 반가운 얼굴로 기뻐하며 웃음을 짓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서로 손을 꼭 붙잡는 가족들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볼 때 마다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어떤 감정이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고 ‘가족이 항상 내 곁에 있다 보니 평소에는 가족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항상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가족의 소중함도 되새겨 보게 되었다.
또한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을 보면서 나도 생활하면서 일상에서 벗어난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잘 해결 해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와 함께 긴 2주간의 공정여행을 힘들다 말하지 않고 묵묵하게 참고 견디며 지내온 내 동생 진석이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도 대견스러웠다. 힘든 환경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모든 이들이 다 함께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구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 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그램을 준비하시고 진행해주신 이정기 센터장님과 하현정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이런 세계로 여행학교의 공정여행과 같은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제1기 세계로 여행학교
강동석 (대아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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