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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여행학교/제3기 세계로 여행학교

[제3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 ⑥]

진주여고1 김환희

 

 

-사전교육-

 

 

내가 여행학교를 오게 된 이유는 엄마의 권유였다. 프리스쿨을 할 때만해도 별로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아무런 기대도 되지 않았는데, 출발할 때부터 뭔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행기의 계속된 지연, 취소, 짐 분실 등의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말 그대로 악순환이었다. 그렇지만 팀워크가 좋아서 그런지 막힘없이 술술 잘 풀어 나갔다.

 

 

-방글라데시-

여행학교 2일째,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에 있는 아샬로이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는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좋았다. 방글라데시에 있을 일주일 동안은 이 아샬로이 학교에서 생활한다고 센터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짐을 풀기위해 3층으로 올라갔는데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싫고 여기서 잘 수는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계속 있다 보니 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방글라데시는 한국보다 시차가 3시간이나 느려서 8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계속 잠이 왔다. 그 다음날은 일어나서 학교 옆 작은 공터에 가서 배드민턴과 축구를 했는데 현지인들이 그 앞을 지나가다가 우리가 신기한지 우리가 노는 것을 빤히 쳐다보더니 어떤 여자 애가 같이 놀고 싶었는지 주춤주춤 하길래 와라고 손짓하니 뛰어와서 배드민턴 채를 잡았다. 이름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뱅갈어를 몰라 물어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공터 안에서 놀다가 골목으로 나와 축구하면서 놀고 있는데 공이 풀 속으로 들어가서 가지러갔는데, 그사이에는 썩은 물이 고여 있었고 냄새가 고약한데다가 벌레도 너무 많아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공을 줍다 자세히 보니 작은 발자국이 1~2개 정도 있었다. 이걸 보고 아이들이 이런 곳에서 뛰어 논다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건물은 지을

때 철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거의 모든 건물들 위에는 철근이 솟아 있었다. 창문이나 문에는 모두 창살로 막혀 있었는데 너무 갑갑해 보였고 페인트칠도 제대로 된 장비 없이 그냥 밧줄하나로만 창문 위에 작은 발판에 올라서서 페인트칠을 하시는데 보는 내가 더 조마조마 했다. 여행학교 4일째, 방글라데시에서의 첫 가정집 방문을 하게 되었다.

밀뿔에 있는 아만씨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출발할 때 가스를 넣고 갔다. 원래 방글라데시가 자동차 매연 때문에 공기가 많이 탁했는데 요새 들어 천연가스를 쓰게 되서 그나마 나아진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아진거 치고는 먼지도 많고 공기도 안 좋아서 천연가스를 쓰기 전에는 공기가 얼마나 더 안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 후에 아만씨 집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들어가니 엄청 반가워 해주셨다. 영상편지를 전달해 드리고 촬영을 한 후에 밥을 먹었는데 진짜 푸짐하게 주셨다. 조금이라도 비워져 있으면 또 주시고 손님이 집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밥을 다 먹고 옥상을 보여 주신다고해서 올라갔는데 아이들이 옥상에서 배드민턴을 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며칠 있지는 않았지만,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자주하는 스포츠가 배드민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행학교 5일째, 배를 타러 갔는데 가는 길에 특히 릭샤 모시는 분들께서 초록색 막대 위에 흰색 거품 같은걸 먹고 있길래 뭐냐고 선교사님께 물어보니 이라는 것인데 배가 고플 때나 몽롱한 기분을 낼 때, 힘을 쓰기 위해서 습관적으로 먹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방글라데시는 건기에는 논이 있지만, 우기에는 논에 물이 차서 없어진다고도 하셨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기 위해 Bangladesh National 박물관에 갔는데 겉보기와 달리 생각보다 커서 놀랬다.

일주일 동안 방글라데시에서 느낀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았다. 방글라데시는 최빈국이지만 있으면 있을수록 행복해지는 나라이고, 계속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다.

 

 

-네팔-

방글라데시에서 모든 일정을 끝내고 네팔로 갔다. 네팔공항에 들어서니 방글라데시에서 막혔던 코가 뻥 뚫리는 기분 이였다. 네팔이 방글라데시에 비해 훨씬 공기가 깨끗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녁 늦게 도착한지라 빨리 저녁을 먹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네팔에서의 이틀째, 차를 타고 약 6시간을 달리고 달려 영상편지를 전해주고 홈스테이를 할 포카라 가기 전에 있는 수니타씨 어머니 댁에 갔다. 저녁이 준비 될 때까지 동네 아이들과 놀았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19살인 까즐 언니와 언니의 동생인 17살 홈비와 많이 친해졌다. 까즐 언니와 홈비는 가족은 많은데 집은 너무 좁다고 하였다. 그 말을 할 때 언니와 홈비의 표정은 울 것 같은 표정이었고, 그 표정으로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영어가 잘 안되어서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물어보지 못해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가면 영어 학원을 바로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은 이채빈씨 가족에게 영상편지 전달과 패러글라이딩을 타기위해 포카라로 이동했고, 하룻밤 더 홈스테이를 하기위해 저녁에 다시 수니타씨 어머니 댁으로 돌아왔다. 이곳은 전기가 제대로 잘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전기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불규칙적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수니타씨 어머니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도중 솔라 판낼이라는 것을 설치해드리기로 결정하였다. 어머니께서는 고맙다며 평생 잊지 않겠다고 하셨다.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너무 뿌듯했다.

네팔에서의 4일째, 한국에 계시는 분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털모자를 기증하기 위해 고아원으로 향했다. 고아원에는 총 9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중 7살 순이라는 아이가 내 옆에서 같이 간식을 먹었는데 자기가 먹기 전에 조금씩 고사리 같은 손에 덜어 고아원에서의 엄마에게 먼저 드시라고 가져다주는데 그걸 보니 순이의 착하고 남을, 어른을 생각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먹을 것이 있으면 일단 나부터 먹고 보는데 순이를 보니 뭔가 내 자신이 창피하고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은 이번 여행학교 중 가장 일정이 많고 바쁜 날이었는데 먼저 꺼멀 씨와 비노드 씨의 집을 방문해 영상편지를 전달하였다. 그 후, 카트만두에 있는 파슈파티나트라는 화장하는 곳에 갔는데 이상한 냄새도 나고 속도 울렁거렸다.

그런데 화장터이면 장례식이나 마찬가지 일텐데 아무리 봐도 울고 있는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약간 놀랬다. 그리고 이렇게 슬픈 장소가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곳인데 라는 생각을 했다. 네팔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왔던 네팔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나라가 전체적으로 알록달록하고 네팔의 집들은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왕 포카라에서 일출까지 보고 왔었더라면 좋았었을 텐데 보지 못하고 와서 너무 아쉬웠다.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들을 배우고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우리가 외국인들에게 하는 행동에 따라 나라의 이미지가 바뀐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