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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여행학교/제1기 세계로 여행학교

[제1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①]

 
김은민 (진명여중 3)

 

인도네시아(Indonesia)

처음에 인도네시아는 덥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에 와 보니 그렇게 거지들만 많이 사는 나라 같지는 않았다. 봉고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 바깥 풍경은 마치 그림 한 폭을 펼쳐 놓은 것 같이 너무 멋있었다. '옹고'라는 운전기사의 운전이 너무 터프해서 차가 자주 덜컹거리기도 하였다. 그래도 옹고아저씨 성격은 좋았고 잘 웃으시는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정말 재밌고도 힘든 경험들을 많이 했는데 우선 호텔의 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때 공정여행의 의미 중 하나인 '환경을 보존하자'라는 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비누로 머리를 감았는데 머리가 다 뻗치고 느낌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최악의 숙소는 브로모 화산 근처에 머문 곳이었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물도 나오지 않았고 인도네시아 변기는 휴지를 2마디 이상 넣으면 변기가 막힌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변기는 한국식처럼 버튼을 누른다고 물이 자동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물 바가지로 물을 부어줘야 한다. 우리나라 1980년대를 경험하다 온 것 같다.

인도네시아 방문 둘째 날에는 홈스테이를 하러 '야니' 아저씨의 집에 갔다. '야니' 아저씨는 자바섬의 중심지역에 사시는데 ‘진주학원’이라는 한국어 학원을 운영하고 계셨다. 사천에 와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모국으로 돌아가서 학원을 차린 것이라고 한다. ‘'야니' 아저씨의 집에 들어갔는데 주변이 논과 밭이 있어 모기와 도마뱀 등 벌레들이 무척 많아 괴로웠다. 그러나 여행학교 프로그램을 통하여 '야니' 아저씨의 집에서 손빨래도 처음 해 본 좋은 경험이었다. 동생과 친구와 함께하는 빨래라서 그런지 재미도 있었다. 많이 보이는 도마뱀의 이름이 ‘찌짝’ 이었는데 모기를 잡아먹는 유익한 파충류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렇게 유익해 보이지도 않았고 정말 기분 나쁘게 생긴 것 같았다. 그 다음 날에는 진주 학원에 있는 학원생들과 축구도 하고 점심도 같이 먹었다. 옥수수도 디저트로 먹었는데 옥수수가 인도네시아 말로‘자궁’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원래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고 왼손으로 변을 보고 닦는다. 그래서 남학생들은 화장실 문화를 따라 하기 위해 왼손을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여학생들은 모두 시도해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음식도 꽤 먹을 만했다. 오기 전에 한국에서 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 많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 나시고랭(볶음밥)과 사떼아얌(꼬치류)이라 불리는 닭꼬치와 치킨 등 맛있는 것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 치킨은 정말 지겹도록 먹은 것 같다. 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에 돼지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두리안이라는 과일만 빼고는 열대 과일들은 다 맛있었다. 두리안은 냄새와 맛 모두 정말 특이하고 이상했다. 두리안이 비싼 과일이라 동남아 사람들은 먹고 싶어도 잘 못 먹는다고 한다. 

여행학교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은 한국에 사시는 외국인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자들이 캄보디아나 인도네시아에 계시는 가족들이 그리워하기 때문에 영상편지를 촬영하여 배달하는 것이었다. DEDI의 어머니는 영상편지를 보시면서 울기도 하셨다. 아들을 저렇게 먼 곳에 보내 놓고 얼마나 보고 싶으실까! 영상편지를 배달하고 촬영하는 것을 모두 마치고 HARIMAN의 집에 가려고 했는데 동네에 아이들이 많이 있기에 아이들에게 사탕도 나눠주고 풍선도 불어주었다. 아이들이 자그마한 풍선 하나 가지고도 무척 좋아하였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보람차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으며 나도 작은 것 하나하나에 감사해야 된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특히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집에 있는 화장실 변기에 뽀뽀를 해 주고 싶다.

인도네시아에 온 지 다섯째 된 날에는 아직까지도 활동 중인 활화산, 브로모 화산에 갔다. 숙소에서 브로모 화산까지 가는 길에는 지프차를 타고 산 아래에서 중턱까지는 말을 타고 갔다. 말을 타고 가는 건 생각보다 정말 재밌었고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다음에 말 타러 몽골에 가보고 싶기도 하였다. 화산 꼭대기에서는 사람들이 에델바이스라는 꽃을 팔았다. 소원을 빌면서 에델바이스를 분화구에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패키지 여행이 아닌 공정 여행을 통해 현지인들과 직접 만나 얘기도 하고 좋은 관계를 맺은 유익한 시간이였다. 맨발로 다녀서 발이 새까만 아이들도 무척 많이 보았는데 나중에 어른이 되면 유니세프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운동화도 선물로 주고 물펌프를 설치해 건강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할 것이다. 또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도 만들어 주고 싶다. 가난하다고 꿈이 없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니까. 내가 그런 아이들의 희망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다. 언제쯤 우리 지구촌 사람 모두가 잘 사는 날이 올까? 이번 여름 방학때는 인도네시아의 남쪽길을 따라서 봉사를 하러 가고싶다.

캄보디아 (Cambodia)

1주일간의 인도네시아 여행을 마쳤다. 비행기를 타고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프놈펜으로 갔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춥파춥스라는 사탕을 사기 위해 U.S. 달러를 말레이시아 돈으로 환전했다. 우리는 1000원, 5000원, 10000원 모두 인물이 다른데  말레이시아는 1RM, 5RM, 10RM 모두 인물이 같았다. 캄보디아의 건축양식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입구는 좁지만 뒤로 갈수록 긴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내가 그토록 원하던 코코넛과 사탕수수를 먹어봤는데 그다지 맛있진 않았다. 그래도 망고스틴과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은 오리지날 망고는 정말 맛있었다. 

캄보디아의 가정 하나하나를 방문할 때마다 돼지, 개, 닭은 빠지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개만 보면 무서워서 도망가곤 했는데 여기에 있는 개들은 모두 하나같이 순하고 사람을 물지 않았다. 신기했다. 캄보디아 방문 첫째 날 23일은 한국의 새해 명절이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안부 전화도 하고 센터장님께 세배를 해서 5달러도 얻어냈다. 이 날 제일 처음으로 롤랭의 집에 갔는데 해먹(hammock)이 있었다. 친구들의 권유로 타봤는데 정말 재밌었다. 재래시장 가서 사고 싶었는데 어디에 파는지 보이지가 않아서 사지 못했다.

이주노동자 로반나의 집에서 결혼이주여성 팔라넷 집으로 가는 길에 고무 나무 농장을 보았다. 매일 책에 있는 사진으로만 봤는데 실제로 보니까 느낌이 또 달랐다. 직접 만져 보았는데 끈적끈적했고 개나리색 보다는 조금 어두운 색이었다. 고무 나무 농장은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일 만큼 굉장히 넓었다.

둘째 날 방문하는 집들은 대부분 결혼이주여성들의 집이었는데 이주노동자들의 집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더 잘사는 것 같았고 결혼 사진도 무척 많았다. 7개의 가정을 돌아보니 비교적 인도네시아가 캄보디아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 GDP가 3,000불 정도고 캄보디아는 774불 정도라고 하니, 정상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2만불 정도는 있어야 된다고 한다. 그래도 캄보디아가
 인도네시아보다 사람들이 더 정겹고 구수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캄보디아에서는 가는 집마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들어서 풍선 불어주는 재미와 볼펜 나눠주는 재미는 있었다.

영상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4개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 이삭학교에 갔다. 이 학교에 있는 캄보디아 학생들이 우리들을 위해 바베큐를 저녁으로 대접해 주었다. 썸므란이라는 잘생긴 오빠도 만나서 대화도 하고 휴대폰 번호도 교환했다. 가기 전에는 사진도 찍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성격이 좋아보였고, 영어실력도 좋은 것 같았는데 1년밖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멋있었다. 이 날이 마침 이삭학교 졸업식이었지만 2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졸업식은 보지 못했다. 썸므란 오빠와 헤어지는 건 너무 아쉬웠다. 한국 가서 연락해야겠다.

이렇게 2주간 여행을 하면서 재밌고 좋았던 점도 많았지만 힘든 점도 좋은 점 못지않게 많았던 것 같았다. 길을 가다가 많은 아이들이 구걸을 했는데 돈을 한 번 꺼내면 위험하다는 센터장님의 말씀도 있었고 친구들이 조직의 아이들일 수 있다 하기도 해서 그냥 주지 않았다. 구걸하는 아이를 뒤로 하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는 척하며 가는 게 나는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았다. 이런 아이들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다음에 이런 나라에 오게 되면 호주머니에 돈을 조금만 넣어 다니면서 그냥 주고 싶다. 그리고 음식이 입에 잘 안 맞아도 그 가족의 정성을 생각하면서 억지로 먹는 것과 화장실 변기 상태가 좋지 않아서 참았던 적도 많은 것 같다. 

여행학교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은 영상편지 배달이지만 서울에서 온 제자교회 청년팀이 도움을 많이 주셔서 영상편지 배달을 잘 할 수 있었다. 총 6번의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각 나라에 해당하는 돈도 많이 환전했다. 나의 취미는 여행을 다녀 온 나라의 화폐 모으는 것인데, 이번 세계로 여행학교를 다니면서 한번에 총 4개국의 화폐가 모였다. 그래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여행하는 동안 힘든 점도 많이 있었지만 보람차고 뿌듯한 여행이었다.

세계로 여행학교를 마치며... 

캄보디아의 앙코르왕조는 13세기 말부터 쇠망하기 시작하여 15세기경에는 완전히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와트도 정글 속에 묻혀버렸는데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가 이곳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원이 정말 넓었고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왕들이 살았을 법했다. 벽을 들여다보니 말이나 돼지 등의 동물 그림들도 참 많았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이 되어있는 앙코르와트에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정말 좋았다.


뚜울슬렝 박물관은 킬링필드 대학살 사건 전에 학교였으나, 전시에 크메르 루즈군의 포로 수용소 및 고문 시설로 사용되어 여러 가지 고문 시설 및 발견 당시의 사진들,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관해 놓은 곳이다.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연필을 많이 잡아서 손이 부드럽거나 안경을 쓰거나, 학식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죽였다고 한다. 들어오는 입구에 킬링필드 사건 때 묻어놓은 지뢰를 잘못 밟아 팔과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구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를 생각나게 했다.

공정여행이란 관광객들이 소비하는 이득을 현지인들에게 돌려주고, 인권·생명을 존중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여행이며 ‘착한 여행’이라고도 한다. 공정여행의 규칙에는 현지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소비하기, 간단한 현지어 미리 배워두기, 지나친 흥정 금지, 환경 생각하기, 멸종 위기종으로 만든 제품은 피하기 등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중에 환경 생각하기를 잘 실천하지 못한 것 같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주로 비누로 머리를 감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화장실에 샴푸가 있길래 샴푸를 자주 사용했고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승용차만 이용한 것 같아 아쉽다. 장거리를 이동했는데 그만큼 나오는 화석연료는 얼마일까? 그래도 다른 건 그나마 잘 지킨 것 같아 다행이다. 인도네시아어와 캄보디아의 간단한 인사말도 배우고 갔고, 캄보디아 재래시장에서도 그렇게 가격을 많이 흥정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다음에 공정여행을 할 때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과 호텔을 주로 이용하고 되도록 환경을 생각하며 샴푸 사용을 자제해야 되겠다.

영상편지에 관한 대부분의 일들은 센터장님과 서울제자교회 청년팀이 도와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다음에는 우리가 빔 프로젝트를 설치하고 보여 드리고싶다. 그래도 가족들에게 영상편지를 하나 하나 보여줄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관광을 하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울루와뚜 사원과 쇼핑몰에 가서 쇼핑하기, 캄보디아에서는 앙코르와트와 재래시장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관광을 하는 것은 단순히 재미 위주지만 영상편지 배달은 가족간의 사랑의 연결 브릿지가 되어주는 것 같아 뿌듯하고 보람 있었던 일인 것 같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영어를 사용해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캄보디아의 재래시장에서는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영어를 잘 못하면 가격 흥정도 잘 못할 판이었다. 그래도 현지어를 많이 사용해주면 더 좋아하실 것 같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지어의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은 것 같다. 여행을 오기 전에는 인도네시아, 캄보디아는 후진국이고 잘 못하는 나라고 우리나라가 더 잘살고 우월하기 떄문에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인도네시아에 도착해보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보다 마음 씀씀이 훨씬 더 좋았고 못 산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또 인도네시아의 부자들을 세계 부자 10위 안에 들기도 한다고 한다. 단지 인구수가 많기 때문에 총 소득액을 인구수로 나누다 보니 GDP가 낮아지는 것이다. 그래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에 가서 우리나라 어린이들과 똑같이 거리낌 없이 대해 준 것 같아 다행이다. 앞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함부로 무시하고 경시하지 말고 우리가 조금 더 잘 산다고 얕보거나 깔보면 안 되겠다. 나의 잘못된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좋은 여행이었다. 

여행학교를 통해 갖게 된 꿈과 비전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나의 꿈이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국제 NGO단체에 관련해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학교를 통해 국제적으로 봉사를 하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과학에도 관심이 많은데 김기대 선교사님처럼 각 지역에 맞는 적정기술을 가져와  그 지역 사람들에게 기술을 배우게 함으로써 제3세계도 잘 살 수 있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지구촌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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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민 (진명여중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