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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여행학교/제3기 세계로 여행학교

[제3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 ⑨]

사대부고1 최시은

 

-사전준비-

여행의 시작.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상해 행 비행기의 1시간 지연으로 날이 다 저물어 갈 때에서야 비행기가 출발하였다. 제공된 기내식을 먹고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상해공항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여 번거로운 환승 절차를 거쳐 쿤밍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갈아탄 후 언제 출발하나 기다리던 중 어처구니없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쿤밍 현지 기상상황이 좋지 않아 쿤밍행 항공운항이 취소되었습니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시나리오에 당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짐을 다시 찾는 중에 우리 팀원 중 한명의 가방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여차저차 공항 직원과 싸워가면서 되찾은 가방을 들고 안내받은 숙소로 버스를 타고 갔다. 숙소에 도착하여 전체적으로 우리 팀 정비를 한 후 각자 방에서 짧게 잠을 청했다.

 

 

-글라데시-

피곤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 하루 일정을 시작하였다. 숙소에서 상해 공항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센터장님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내용은 대충 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되 진짜로 잘 하는 한 가지는 있어야한다.” 그리고 창의력이 생명력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생각해 보니 난 특별하게 잘 하는 것이 없었다. 내가 현대의 기존 장르에 약하고 어려워한다면 나만의 장르를 창조하여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버스 안에서 하면서 상해 공항에 도착하였다. 쿤밍행 비행기를 탔고 쿤밍에 도착하여 다카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고생 끝에 도착한 다카의 기후는 생각했던 것 보다 괜찮았다. 너무 덥지도 않았고 너무 춥지도 않았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분위기가 너무 반가웠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 걸려서 일주일간 지내게 될 Ashaloy 학교에 도착하였다. 처음엔 바퀴벌레가 조금 많아서 불편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져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바퀴벌레들과 공생하였다. 학교 옆 작은 공터는 배드민턴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일정들이 현지 정치적 사정 때문에 많이 취소된 탓에 비는 시간이 많아서 종종 나가서 현지인들과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였다. 배드민턴을 치다가 보게 된 공터 구석의 고인 물은 썩어가고 있었고 고인 물웅덩이에 작은 발자국들이 남겨져 있었다. 발자국들을 보고 아이들이 이런 물에서 논다는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이 방글라데시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라는 것이 이곳의 현실 이였다.

 

방글라데시의 음식은 나와 정말 잘 맞았다. 달 커리와 풀풀 날리는 밥이 말레이시아에서 살 때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했다. 방글라데시의 현지인들은 내 눈엔 너무나도 낮 익은 얼굴들이었다. 정말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방글라데시에서의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취소된 일정들 때문에 조금 아쉬운 느낌도 있었지만 영상편지 전달 대신 현지 재래시장에도 가보고 방글라데시의 백화점도 가보고 방글라데시의 독립의 아버지인 봉고본드의 생가도 방문해보고 국립 박물관에 가본 것이 이 나라에 대해 공부할 만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네팔-

방글라데시를 다음으로 네팔로 떠났다. 네팔에 도착하여 중국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에 가서 다음날을 위해 푹 쉬었다. 다음날 아침 카트만두를 떠나 포카라를 가기전 지역에 있는 결혼이주여성 수니타씨 어머니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수니타씨의 부탁을 받아서 첫날 저녁을 현지 시장에서 멧돼지 고기와 야채를 사서 김치찌개를 요리해서 어머니께 대접해 드렸다. 많이 부족한 요리 솜씨였지만 수니타씨 어머니가 맛있다고 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었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Moh Neeca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냥 딱 봐서는 세살 누나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14살의 꽃다운 소녀였다. Moh Neeca와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한국식 이름과 네팔식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는 Moh Neeca에게 지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나에겐 Mushkan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지윤이라는 이름은 Moh Neeca가 지윤이라는 친한 친구의 여자 친구를 닮아 서 지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되었다. Moh Neeca가 말하길 나에게 지어준 Mushkan라는 이름에는 귀여운 미소라는 뜻이 있다고 하였다. 피곤하고 힘든 여행에서 영어를 하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밝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친절하고 밝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스테이 이틀이 되는 날에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갔다. 한번 경험해 보아서 별로 긴장되지는 않았었다. 하늘에 떠서 바라본 이국의 땅은 아름다웠다. 눈앞엔 잔잔한 호수가 있었고 등 뒤로는 네팔의 산들이 있었다. 구름이 많이 껴서 자세하게 보진 못했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설산의 실루엣이 내 마음을 더욱 더 설레게 한 것 같다. 다시 홈스테이로 돌아와 준비했던 축구공으로 동네 아이들을 이끌고 가서 축구를 하였다. 공 하나로 그렇게 밝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이 나의 지금의 모습이 어떤지 되돌아보게끔 하였다. 저녁 식사가 준비되는 시간에 같이 있던 아이들과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아서 서로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수니타씨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네팔 음식들로 배를 채웠다. 몸도 마음도 따뜻한 시간 이었다.

 

다음날 아침 벌써 카트만두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선물로 챙겨온 모나미 펜을 Moh Neeca와 다른 친구들에게 선물해주었다. Moh Neeca도 아쉬웠는지 염주 비슷한 목걸이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카트만두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간에 몸도 풀 겸 강가로 가서 구름다리도 건너고 예쁜 돌들도 주웠다. 다시 이동하면서 사탕수수도 사먹고 현지 과자도 사먹었다. 카트만두로 도착하여 현지 식당에 가서 치킨커리와 난을 먹었는데 말레이시아 생각이 많이 났었다. 카트만두에서 지내었던 숙소는 좋았다. 생각처럼 따뜻하진 않았던 물로 샤워를 하고 선규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분주하게 아침을 시작하였다. 영상 편지 전달 일정을 다 마치고Bhaktapur로 구경을 하러 갔다. 자유롭게Bhaktapur 내를 돌아다녔다. 구경을 하면서 네팔의 전통 건축 양식들이 정말 인상이 깊었다. 창틀이 다 수작업을 통해 지어졌다고 스쿤다 삼촌이 설명해 주셨다. Bhaktapur를 다 구경한 후 네팔의 유명 관광소인 Pashupatinath 화장터로 이동하였다. 화장터가 유명 관광소라는 점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는 슬퍼할 장소인 화장터에 나 같은 이방인이 관광을 목적으로 구경을 간다는 것이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조금 느낌이 묘했었다. 화장장엔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매스껍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화장장을 다음으로 숙소 주변을 돌며 쇼핑을 하였다. 네팔은 정말 수공예품 기술이 발달한 것 같았다. 나는 야크뼈로 만든 팔찌를 사서 찼다. 손목이 묵직해진 느낌 이였다. 쇼핑을 마치고 오전에 영상편지를 전달해 주었던 꺼멀씨의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시작 하기 전 주문제작 해 두었던 생일 케이크로 다 같이 희은이의 17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스쿤다 삼촌과 꺼멀씨 가족들이 예상 밖의 생일 선물을 희은이에게 전달해 주었다. 정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에서의 전체적인 일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다음날 아침 아쉬운 대로 숙소 근처에 있는 현지 시장을 구경하고 못 다한 쇼핑을 마저 하고 공항으로 갔다. 몰래 준비했던 롤링페이퍼와 선물을 스쿤다 삼촌에게 전달하였다.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며 인사를 하고 환희와 함께 공항 안내를 하였다. 공항도 이제는 몸에 익어서 일이 쉽게 느껴졌다. 쿤밍 공항에 도착하여 노숙을 하였다. 재현이가 여태 많이 긴장하고 피곤했던지 많이 아팠었다. 그래도 별 탈 없이 상해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다. 상해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김해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엔 한글이 가득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나 반가울 줄이야! 사천에 와서야 긴장이 풀렸다. 마무리가 좋아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집에 와서 이번 여행을 정리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진짜 내가 방글라데시 다카나 네팔 포카라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부터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 진짜 지구가 이젠 좁은 세상 이라는 것, 작은 생각들과 배려들이 한 사람을 살린다는 것 까지! 이번 여행은 나로 하여금 세상을 넓게 볼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뭐라고 글로 표현하기 힘든 사소한 감정 생각들까지 평생 가지고 살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