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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들 학력 인정 안 돼 발 동동.. “쉽게 안 되나요”

내 학력 알아주는 곳은 어디?
2010년 03월 09일 (화) 16:47:50 하병주 기자 into@news4000.com

보육교사나 간호조무사 등 전문직 취업을 희망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늘고 있지만 모국에서의 학력을 인증 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1월 현재, 한국인의 배우자로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은 13만3766명이다. 이 중 여자가 11만6676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른 바 결혼이주여성들이다.

이들 결혼이주여성들이 처음 국내에 들어왔을 때는 그 숫자도 적은 데다 사회적 편견까지 있어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위축된 모습에서 점점 벗어나는 추세다. 나아가 자아성취와 경제활동욕구가 맞물려, 가능한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려는 여성이 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학력이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위한 전문가 양성과정을 들으려 해도 고교졸업 학력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대한민국이다.

결혼이주여성들이 겪는 '학력 인정받기의 어려움'

그런데 이들 결혼이주여성들의 경우 한국으로 시집오기 전 그들 모국에서의 학력을 인증받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이는 물론 우리나라보다 그들 모국에 책임이 더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미 한국 국적을 가진 내국인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을 문제는 아니라는 게 결혼이주여성들이나 이들의 적응을 돕는 시민단체 쪽 입장이다.

3월8일, 102돌을 맞는 ‘세계 여성의 날’에 즈음해 우리나라 결혼이주여성들이 겪는 ‘학력 인정받기의 고충’을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로첼 씨는 이미 간호조무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자격증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간병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

먼저 ‘간호조무사의 꿈’을 이뤘다고 보도한 적 있는 필리핀 출신 로첼A 마나다 씨 얘기부터 해보자. 그녀는 1년간의 간호조무사 양성과정을 마치고 지난해 10월 경상남도가 주관하는 간호조무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시험응시에 앞서 응시자격이 있는지 한 때 논란이 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교과정까지 12년 학제인 반면 필리핀은 10년 학제여서, 이를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물론 관련법에서는 가능한 쪽으로 문을 열어 놓긴 했지만 그 조건이 ‘상급학교에 입학’할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간호조무사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되는지를 두고 정부의 해석이 필요했던 것이다.

고심 끝에 보건복지가족부는 필리핀처럼 ‘10년 학제’이라도 그 학력을 인정해 간호조무사 응시자격을 주기로 했다.

간호조무사 시험에는 합격했건만... 필리핀 출신 로첼

그러나 로첼 씨는 아직 조무사 자격증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로첼의 학력 인증 절차가 남았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어느 고교를 졸업했다는 증명서를 받아 와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만만찮다는 얘기다.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교육과학기술부에 문의해도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자세히 알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 주재 필리핀 대사관에 문의해도,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에 문의해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그녀는 아직까지 정식 간호조무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28일, 진주산업대 보육교사 양성과정 수료식에 참석한 정화월 씨(맨 왼쪽). 그녀는 이때만 해도 곧 보육교사교육원에 입학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학력인증이 되지 않아 등록금을 돌려 받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다음은 보육교사가 되고 싶은 중국 출신의 정화월 씨 경우를 보자. 정 씨의 경우 국립 진주산업대에서 운영하는 보육교사교육원에 입학이 예정돼 있다는 보도를 이미 한 바 있지만 결과적으로 오보였다. 이후 대학 측에서 입학 자격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등록금을 돌려주어 ‘없던 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말한 ‘입학 자격’은 곧 ‘고교졸업 확인’이다. 정 씨는 중국에서의 고교졸업을 인정받기 위해 한 달 넘게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현재 중국에서 교육 받은 사람의 국내 학력인증업무는 중국대사관에서 위탁 받은 ‘공자아카데미’란 곳에서 맡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경우 고교를 졸업할 때 일종의 졸업고사인 ‘후이카오’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교육위원회가 발급한 졸업증서를 공증까지 받아도 "안 돼"

문제는 이 ‘후이카오’가 1994년부터 도입됐는데 비해 정 씨는 1992년에 이미 고교를 졸업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아카데미에서는 정 씨의 학력인증 요구에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정씨는 자신이 살던 중국 길림성 교육위원회가 발급한 졸업증서를 국내 공증전문기관에 확인까지 받아 제출했지만 허사였다. 대학에서는 중국대사관에서 졸업증서를 확인해 줄 수 있는지 다시 물었고, 중국대사관은 다시 공자아카데미에 문의하라고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처음과 같았다. 결국 정 씨는 보육교사 양성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정 씨는 고등학교 졸업을 인정받기 위해 주중 한국영사관에 확인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올해 보육교사 양성과정 입학은 글렀다.

앞선 사례에서 보면, 외국에서의 학력을 국내에서 인정받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 국가가 발행한 문서를 다른 국가에서도 인정해 주도록 한 협약이 ‘아포스티유(Apostille)’이고, 우리나라도 여기 가입해 있다. 따라서 학력인증뿐 아니라 자국의 공식문서를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받으려면,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와 같은 곳에서 아포스티유 확인을 받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세계적으로 92개국이 아포스티유 협약에 가입해 있는 반면 결혼이주여성들의 주요 모국인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 아시아 대부분 국가들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나라들의 경우 영사확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문서가 사용될 국가가 자국의 해외공관에서 문서를 확인해주고 있다. 따라서 필리핀 출신의 로첼 씨나 중국 출신의 정 씨의 경우 자신의 졸업증명서를 그 나라의 한국영사관에서 확인을 받으면 가능하다는 게 외교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혼이주여성들 "학력인증 절차 간단히 안 되나요?"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런 절차가 있다고는 하나 결혼이주여성들이 활용하기에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모국의 상황에 따라 또 모국에 있는 가족들의 형편에 따라 더 큰 편차를 보인다. 어차피 그 나라에서 졸업증명서를 확보한 뒤 번역과 공증과정을 거쳐 영사관에 접수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만만찮다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갈리나 씨(왼쪽에서 두 번째)도 학력인증이 안 돼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 이정기 센터장은 결혼이주여성들도 한국인인 점을 감안해 절차를 좀 더 간소화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결혼이주여성 숫자가 10만이 넘었다. 이들이 한국인으로 당당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부도 더 하고 좋은 일자리도 가져야 하는데, 그 전제조건이 학력인증이다. 교과부나 외교부 등 관련부처에서 협의해 지침이나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창구도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는 얼마 전부터 결혼이주여성들을 상대로 대입 검증고시반과 고입 검증고시반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기존 학력을 인정받아야 검증고시 응시자격이 생기기에 고민에 빠져 있다.

일부 여성들은 학력인증 절차를 포기하고 아예 초등학교 과정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이럴 경우 대입 검정고시까지 아무리 빨라도 2년이 걸리는데다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어 망설일 수밖에 없다.

결혼이주여성들의 학력인증 문제는 최근 불거지고 있다. 또 그 절차의 간소화 요구도 이제 막 시작이다. 따라서 당장은 해결책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이에 관해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결혼이주여성에 관한 문제는 처음 접한다”며 “하지만 현재로선 다른 방법이 없어 기존 방식대로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대입 검정고시반에 결혼이주여성들의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이들도 검정고시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는 학력인증을 받아야 하기에 고민이 깊다.
결혼이주여성 또는 다문화가정이란 개념이 등장하고 그런 용어가 일반화 되어 가는 것을 두고 ‘한국사회의 또 다른 변화’라고 설명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런 변화 속에 불거진 ‘학력인증’ 문제는, 어쩌면 새롭게 등장할 여러 가지 과제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따라서 기존 제도와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국인’에 걸맞은 ‘맞춤형 정책’이 개발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결혼이주여성들의 학력인증 간소화 요구는 이런 흐름과 맞물려 있다는 게 이들을 후원하는 시민단체 쪽 설명이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사회 곳곳에 진출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