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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언론보도자료

(뉴스사천) 삼촌들의 피부색과 국적이 중요한가요?

 

 

 

시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던 27일,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센터장 이정기, 이하 센터)의 가을산행에 동행했다. 이날 이주노동자 35명, 자원봉사자 17명이 참가했다. 정오를 조금 넘겨 25인승 미니버스를 1호 차로 앞세우고 4대의 승합차가 뒤를 따랐다. 차량은 사천네트워크 소속 시민단체에서 지원했고, 운전은 자원봉사자들이 맡았다.

 

지리산 노고단의 길목인 성삼재는 서둘러 북상한 가을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하늘은 티 없이 맑았고, 서리 맞은 단풍은 한껏 농익었다.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 7개국의 국기를 휘날리며 산을 오르는 모습은 풍경 속으로 자연스레 녹아드는 또 다른 장관이었다.

 

산행을 이끈 이정기 센터장은 센터를 꾸려온 지난 세월이 “온통 재미나는 일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산행에도 거창한 슬로건이나 의의가 없단다. ‘그저 좋은 사람들과 상쾌한 바람을 즐기기 위한 놀이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서로 다른 문화, 낯선 사람들이 만나 조화를 이뤄내는 게 다문화사업인데, 이주노동자를 사업 대상자로 한정해 버리면 다문화는 결코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가 늘 강조해온 것은 ‘어울림’이었다. 다름의 간극이 멀수록 서로 만나고 부대끼는 기회가 많아야 빨리 익숙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동안 센터가 펼친 사업에 한국인을 위한 자리가 적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얼마 전 문을 연 ‘다문화도서관’도 절반은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시설인 셈이다. 산행을 하며 이야기를 나눈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사명감’보다 ‘즐거움’을 더 크게 느낀 까닭도 그제야 이해가 됐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정초원 대리는 매주 수요일 동료들과 출근길 운전봉사활동을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개인적으로 교육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러 오는 일이라 주말을 기다리게 된다”며 웃었다. 민간외교사절단 ‘반크’ 활동을 한다는 최연화(사천고2) 양도 1년째 센터를 찾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느냐며 조심스레 떠보니 “한국인보다 더 순수한 사람들이라 만날 때마다 즐겁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원봉사자들은 ‘그냥 좋아서’ 센터 일을 돕는다고 입을 모았다. 풍성한 인터뷰를 수확해 가야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었으나, 짤막한 대답들의 울림이 너무 커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외국인과 한국인의 다른 점’을 묻자 이예리(경상대사범대부속중1) 양은 더욱 야무지고 단단한 이야기로 기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 양은 이정기 센터장의 둘째 딸인 까닭에 유년시절을 그들과 함께 보냈다.

 

“국적이나 피부색이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삼촌들에게 대한 편견을 가진 친구들을 가끔 보기도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커서 UN 같은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싶은데, 저는 삼촌들 덕분에 학교나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생활로 누리고 있거든요.”

 

그 무렵 기자는 취재수첩을 닫았다. 산행을 마친 식사자리에서 베트남 출신 투(26) 씨가 “형님 드세요”라며 공기밥을 건넸다. 그는 여행을 좋아해서 틈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그는 해운대, 제주도가 특히 아름다웠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출신 얀또(33) 씨는 한국생활 5년차로 다음 달에 아기가 태어난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기가 보고 싶지만, 더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통역사로 일하고 싶다는 당만휴(26) 씨는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마음을 먼저 열어준 것은 그들이었다.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잦아졌다. 거대한 담론을 나눠서가 아니었다. 고단했던 지난 일주일을 서로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팔다리와 어깨에 달라붙은 삶의 피로를 천천히 닦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