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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여행학교/제4기 세계로 여행학교

<제4기 세계로여행학교 기행문 ⑦ - 진주남중 2학년 박지민>

진주남중 2학년 박지민

 

인도네시아

 

우리가 처음 도착한 집은 한국에서 내 파트너였던 수완다씨 집이였다. 우리가 거기에 도착한 시간은 무려 새벽 2시 경이었다. 우리는 거기에서 수완다씨 가족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약간은 무섭고 낯설었다. 하지만 밝은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시고 늦은 새벽까지 안 주무시고 기다려 주신게 감사했다. 우리가 오자마자 과일을 굉장히 많이 주셨다. 매우 감사했다. 비행기에서부터 느끼한 음식만 먹었기 때문에 과일이 정말 맛있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먹는 중에 수완다씨 동생이 왔다. 동생이 있다는 것은 수완다씨와 사천 다문화 센터에서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일 줄은 몰랐다. 처음 봤을 때는 수완다씨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수완다씨 보다는 약간 마른것 같았다. 그리고 이름도 쌍둥이답게 수완디였다.

 

피흐리씨네 집은 학교 건물 근처에 있었다. 밥을 대접해 주셨는데 초콜릿 푸딩이랑 치킨 등이 있었다. 치킨은 먹기에는 좀 짰다. 밥을 먹고 영상편지 전달을 한 후 우리는 앞에 있는 학교로 이동했다. 거기 학교에서 우리는 인기스타가 된 것 같았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공책과 볼펜을 들고 와서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그 엄청난 싸인회를 끝내고 우리는 피흐리씨가 공부했다는 학원으로 갔다. 그 학원에서 2팀으로 나뉘어져서 수진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는데 무슨 소린지 난 한국인인데도 잘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후 잠이 들었다. 잠에서 일어나니 수업은 40분정도가 지났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학원의 원장 선생님 댁에 초대받았다. 그 집에 가서 선생님이 가지고 나오신 것은 바로 콜라!!!가 아닌 콜라병에 담긴 홍차였다. 인도네시아는 콜라병처럼 생기고 콜라병만한 병에다가 색깔도 비슷한 홍자를 담아 마시는 것 같다. 홍차 2~3병정도 마시고 수박도 3조각정도 먹은 것 같다. 그 후 우리는 원장님에게 인사를 한 뒤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피흐리씨 집으로 가서 가족들에게인사를 드리고 출발했다. 버스로 가는 중에 운전아저씨가 너무 멀리 가서 다시 U턴했다.

 

우리가 간곳은 껀달의 공업학교였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대학교만큼이나 시설이 잘 되있었다. 그곳을 견학한 후에 우리는 수영장에 가서 우리의 파트너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재미있게 놀고 우리는 밥을 먹으로 식당에 갔다. 그리고 거기서 생선 튀김, 오징어 볶음 그리고 치킨을 먹었다. 굉장히 맛있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우리는 내일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후딱 씻고 바로 우리 파트너들을 반겼다. 우리는 곧 색 분할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 파트너 맆키의 색 분할그림은 왠지 되게 강렬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그런대로 멋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린 그림을 우리는 껀달 진주 학원에 증정하고 버스를 탄 후에 헤어졌다. 껀달 진주 학원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영상 편지 전달하는 일에 몰두했다.

 

다음 집은 부디 산토쏘씨 집이였는데 그 집은 나무로 지어졌고 바닥은 흙이라서 의자에 앉으니 약간 들어가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그 집에서 음식을 대접해 주셨는데 이름은 소토 아얌이었다. 소토는 죽 아얌은 닭을 의미하기 때문에 소토 아얌은 닭죽정도로 볼수있었다. 또한 맛도 굉장히 좋았다. 그걸 먹고 우리는 그 마을의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 주었다. 그 후에도 우리는 산토쏘네씨 형의 집을 방문하였다. 산토쏘씨 집을 방문해서 우리는 음료수도 먹고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면서 놀았다. 그리고 우리는 아스무니씨네 집에 빨리 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가버린다고 해서 서둘러 인사하고 버스에 올라타서 출발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마지막집 아스무니씨 집! 그런데 머랄까 이때까지 무리를 했나? 아스무니씨 집에 들어서자마자 컨디션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입맛도 없어졌고 나른하고 피곤했다. 그래서 대충 빨리 먹고 나는 그냥 벽에 기대어 쉬다가 그대로 잤다.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후에 조은희 소장님의 동생분과 선교사아저씨를 만난 후에 돈이 필요한 경찰아저씨를 거쳐서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날 우리는 힐라스쿨 아이들을 만났다. 꼬마 부터 대학생처럼 보이는 형들도 있었다. 식사를 하고 “ME플라스라는 플라스틱 수도관을 만드는 한인기업을 탐방했다.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단했다.

 

우리는 힐라스쿨로 돌아와서 에녹 선교사님의 재밌고 슬프고 옛날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한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재미는 있었는데 다른 말레이시아 아이들이 알아들었을까나? 그리고 우리는 두현이형이 치는 피아노를 들었다. 매우 현란하고 멋진 솜씨였다.

다음날 아침 에넥 김 선교사님이 닫아 주신건지는 몰라도 창문이 닫쳐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침을 조은희 소장님의 동생분이 사온 이상한 밥? 으로 간단하게 먹고 집을 나섰다. 그 후 우리는 역시 힐라스쿨에 가서 인도네시아에서 한 색분할그림을 또 그렸다. 약간 질리고 재미없고 힘들었다. 무엇보다 수진선생님이 계속 옆에서 조언을 해서 귀찮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함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어디가 덧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건데 왜 계속 옆에서 조언을 하시는지 참....... 어쨌든 어찌어찌해서 색 분할그림을 완성했다. 그걸 힐라스쿨에 기증하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마지막 나라인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캄보디아

 

우리는 저녁으로 수키라는 캄보디아식 샤브샤브를 먹었다. 그리고 숙소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우리는 방을 나눈 후에 나는 센터장님과 같은 방을 썼다. tv에서 한국 드라마를 봤다. 그러다가 잤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굉장히 오글거렸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영상편지를 전달했다. 연생씨 가족들에게 영상편지를 전달하고 다음집인 소폰씨 집으로 가려고 했으나 자동차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근처 슈퍼? 카페? 에 들러서 사탕수수즙을 마시고 콜라도 마시고 음료수도 마시고 수리가 끝날 때까지 이야기하면서 탱자탱자 놀았다. 그리고 마침내 수리가 끝나자 우리는 곧바로 소폰씨네 집으로 갔다. 그리고 우리가 영상편지 전달을 하려고 준비하는데 정전이 일어났다. 그래서 우선 식사부터 했다. 밥만 엄청나게 먹은 거 같다. 그리고 우리는 전기가 돌아오자 영상편지를 전달했고 그리고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우기라서 그런지 비가 엄청 왔다. 영상편지 촬영이 끝나자 우리는 근처에서 숙소를 구해 거기서 잠을 잤다.

 

 

다음날 우리는 첵소콤씨네 집에 가서 영상편지 전달을 하려고 했으나 솔라홈 시스템을 설비하고 나는 물소를 쳐다보면서 있다가 밥 먹으로 오라고 해서 올라가서 밥 먹고 카레로 한 그릇 더 먹고 두현이 형이랑 라면도 부셔 먹고 물소 쳐다보러 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프놈펜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을 잤다. 그 다음날 우리는 원래 2집을 가야하지만 소니네 집이 잠기는 바람에 임실라이씨네 집에 갔다. 뚜올슬랭 박물관이란 곳을 갔다. 그곳은 옛날에 캄보디아 사람들이 무수하게 죽어나간 학교이자 교도소이자 감옥이었다. 그곳에서 우리의 가이드이자 조력자인 씀밧형이 눈물을 닦은 건지 눈을 비빈 건지는 잘 모르겟지만 안쓰럽고 기운이 쭉 빠졌다. 그리고 우리는 공항으로 간 후에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서 시간을 보냈다. 거기서 나는 센터장님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고추냉이 맛 과자를 먹고 놀랐다. 진짜 고추냉이 맛이 쌔게 낚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공항에서 인솔해서 한국까지 들어온 건 좋았는데 공항에 우리 누나를 두고 왔다. 그래서 허빈 간사님이 누나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나는 감자탕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나는 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