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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결혼이주여성 1년만에 초중고 검정고시 통과…

 

» 결혼이주여성들이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 검정고시반에서 지난 3월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조춘화·임이의·윤은화·박선화씨.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 제공


1년만에 초중고 검정통과…“재능기부 선생님 고마워요”
사천다문화센터 만학 4인방
“취업 원해도 가방끈이 발목
이제는 꿈 이룰 용기 찾았죠”

국어도 사회도 국사도, 한국말로 된 것은 다 어려웠어요.”

중국 출신 결혼이주여성 임이의(29·한족)씨의 말이 괜한 엄살처럼 느껴졌다. 1년 남짓 만에 초·중·고교 검정고시를 일사천리로 통과한 ‘비결’이 궁금하던 차에 돌아온 그의 답변이 다소 의외라서였다. 2007년 9월 한국 남자와 결혼해 곧바로 국내에 정착한 임씨는 지난해 3월 경남 사천의 다문화통합지원센터(다문화센터)의 검정고시반에 등록했다. 그해 5월과 8월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잇따라 합격했다. 지난 12일에는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도 붙었다. 한국말이 서툴러 한국어 공부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1년 넘게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4시간 동안 수업을 듣고 틈날 때마다 책과 씨름한 결과였다.

임씨와 1년 동안 함께 공부한 조선족 출신 결혼이주여성 윤은화(34), 조춘화(37), 박선화(32)씨도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의 기쁨을 함께했다. 2006년 한국에 온 윤씨는 공부를 시작한 뒤 얼마 안 돼 덜컥 둘째를 임신했다. 입덧과 점점 불러오는 배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는 책을 놓지 않았다. 윤씨는 시험을 넉달 앞둔 올해 1월1일 아들을 출산한 뒤 몸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수업에 나왔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조씨는 밤샘 근무를 한 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문화센터에 나와 공부를 했다. 조씨도 임씨처럼 1년여 만에 초·중·고교 과정을 모두 마쳤다. 조씨와 임씨는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한국에서 학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조씨는 “중국에서 학력 증명서를 가져오면 되는데 이를 떼줄 가족이 남아 있지 않았다”며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봤지만 절차가 복잡해 초등학교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낯선 땅에서 적응하랴 애들 키우랴 바쁜 결혼이주여성들이 왜 힘들게 검정고시에 도전했을까? 이들은 “간호조무사나 보육교사를 지원해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학력의 벽이 높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문화센터 검정고시반에서 16명이 수업을 듣기 시작했지만 한달 만에 이들 4명만 남을 정도로 뒤늦게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이들은 어려운 공부 과정을 거쳐 검정고시에 통과한 걸 다문화센터장인 이정기(41) 목사와 재능기부를 한 선생님들의 공으로 돌렸다. 조씨는 “우리가 잘 못 따라가는데도 항상 ‘여러분은 천재다’라고 용기를 북돋워준 수학 선생님과 기회를 주신 이 목사님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수학을 가르친 김동석(40)씨는 “백지에서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다 큰 학생’들의 열정에 나 역시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 목사는 “학력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이주여성들의 우리 사회 정착 문제를 풀 수 없다”며 “검정고시반을 앞으로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7년 동안 사천의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한글·운전면허 교육과 전문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꿈에 한발짝 다가선 이들은 “기분이 붕붕 뜬다”고 했다. ‘입을 맞춘 듯’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조언도 했다. “힘들다고 핑계 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요. 목표를 세우고 일단 저질러 보세요.”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