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중국 새댁 1년 만에 초·중·고 검정고시 뚫었다

"남편과 시어머니께 귀찮을 정도로 묻고 또 물었어요"

경남 사천시로 시집 온 중국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이 1년 만에 초·중·고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모두 합격해 화제다 .

12년이 걸리는 초·중·고 학력 과정을 모든 것이 낯선 이국땅에서 불과 1년 만에 통과해 버린 '검정고시의 달인'은 중국 한족(漢族) 출신의 결혼 4년차 주부 런리이(29·사천읍 정의리) 씨.

지난 2007년 9월 사천으로 시집 온 런 씨는 조선족 출신이 아닌 한족이어서 한국말과 문화에 아주 서툴렀다. 그러나 아이 둘을 낳고 살면서 평소 자신의 꿈인 간호조무사가 되고 싶어 학원에 원서를 냈지만 고교 졸업이상 학력을 요구하는 제한규정에 막혀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4년 전 경남 사천으로 시집 와 자매 둔 한족 런리이 씨
운전면허·한식조리·컴퓨터정보처리기술 자격증도 따


기업체에 취업 원서를 내려 했지만 학력 등을 이유로 매번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중국 헤이룽장 성 치치하얼의 시골에서 살았던 그는 다니던 학교가 없어져 학력을 인정받을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좌절했겠지만 런 씨는 오히려 오기가 발동했다.

"한국 고교 졸업장을 따겠다"고 작심한 그는 지난해 3월, 다문화 가정 이주여성과 자녀들을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센터장 이정기)가 운영하는 학력검정고시반에 들어갔다.

그러나 4살, 3살짜리 남매를 둔 결혼 4년차 주부로 한국말과 글도 서툰 형편에서 초·중·고 학력 검정고시 준비 과정은 너무나 험난했다.

일상에 지치기도 한 그는 늘 공부할 시간이 모자라 아이들과 남편이 모두 잠든 심야에 홀로 불을 밝히고 책과 씨름을 했다.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 내 검정고시반에서 오전 9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수업을 들은 뒤 집으로 돌아와 틈나는 대로 공부했고, 검정고시를 2개월 앞두고는 공무원인 남편의 도움을 받아가며 밤을 새워가며 책에 매달렸다. 책상에 엎드려 잠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공부시작 2개월여 만인 지난해 5월에 중학교 입학자격을, 8월에는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통과했고, 이번에는 고교 졸업학력(대입자격)검정시험에 합격해 한국인들이 12년 다니는 초·중·고 과정을 1년여 만에 해치우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한글이 너무 어려워 힘들었다"는 런 씨는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과 남편에게 소홀했던 게 늘 미안했다"고 말했다.

공부를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과목은 역시 국어, 국사 등 능숙한 한국어가 필요한 과목들이었다. 영어, 수학, 과학 등은 중국에서 배운 것도 있어 좀 수월했지만 한국어로 된 과목과 한국 속담, 한국 역사와 문화 등을 다루는 과목에는 쩔쩔맸다. 이럴 때마다 그녀는 센터 강사들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물었고, 집에서는 남편과 시어머니께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해댔다.

"아이들도 잘 키우고, 대학에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그는 기회가 되면 대입 수능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매사에 열심인 그는 운전면허증과 한식조리사 자격증, 컴퓨터 정보기술자격증(MS워드 A급)도 따놓은 상태다.

한편,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의 검정고시반에서 런 씨와 함께 공부한 중국 조선족 출신 조춘화(37) 박선화(32) 윤은화(34) 씨 등 결혼이주여성 3명도 이번에 고교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04년 설립된 비영리민간단체인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는 시 지원금과 각종 기부금으로 지역의 다문화가족과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각종 지원 사업을 벌여 오고 있으며, 지난해 3월부터 결혼여성이주자를 대상으로 학력검정고시반을 운영하고 있다.

이선규 기자 sunq17@busan.com

| 5면 | 입력시간: 2011-05-16 [10:17:00]